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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북은 순례 남은 관광, 분단만큼 극과 극

등록 2007-06-05 13:42수정 2007-06-14 13:24

평양 만경대 김일성 생가를 방문한 북한 주민들이 지난 5월14일 줄을 서 관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평양 만경대 김일성 생가를 방문한 북한 주민들이 지난 5월14일 줄을 서 관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류이근 기자의 평양 방문기] ①만경대
남북 모두 ‘필수 코스’…북에선 ‘고향집’
역사와 신화 뒤엉켜 ‘정치적인 덫’ 잠복
<한겨레21> 류이근 기자가 5월초부터 북쪽이 주최하는 제10차 ‘평양봄철국제상품전람회’(북쪽 표현)를 취재하려고 일주일간 평양을 다녀왔다. 류 기자는 평양 방문기간 동안 국제상품전람회는 물론 신발공장, 옷공장, 화장품공장, 영남 배수리 공장 등 북한 경제의 현장을 취재했고, 만경대 김일성 생가와 민족식당 등을 방문했다. 류 기자가 <한겨레21> 기사에 다하지 못한 취재 뒷이야기를 보내와 4회에 거쳐 싣는다.<편집자주>

남쪽 사람들에겐 만경대는 보고 싶든 보고 싶지 않든, 평양에 가면 안내받는 첫 방문지이자 필수 관광 코스다. 북쪽이 5월14일 오전에 평양에 도착한 ‘남조선 신문 <한겨레>의 제10차 ‘평양봄철국제상품전람회 참관단’(북쪽 표현)을 맨 처음 안내한 곳도 바로 만경대였다. ‘우리를 알려면 이 곳을 맨 먼저 둘러봐야 한다’는 고집처럼 읽혔다.

김정일 생가라는 백두산 밀영과 함께 단 2곳

북쪽에선 만경대라 하지 않는다. ‘만경대 고향집’이라고 말한다. 하기야 <네이버> 검색창에 ‘만경대’를 치면, “북한산에 있는 고봉으로 북쪽의 인수봉과 백운대를 합쳐서 삼각산(三角山)”으로 불리는 ‘만경대(萬景臺)가 먼저 뜬다. 고향집 앞에 김일성이란 이름을 붙여야 정확하겠지만, 북쪽에선 김일성이란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지 않으려 했던 것인지 아니면 기념할 고향집이란 ‘백두산 밀영’(김정일 생가라고 주장하는 곳)과 더불어 단 2곳에 불과하기 때문인지 만경대 고향집으로만 불린다. 평양 지도(평양 시내 호텔에서 1유로에 판매)를 보면 만경대고향집을 “위대한 수령 김일성 주석께서 탄생하시여 어린 시절을 보내신 유서 깊은 곳이다. 여기에는 김일성 주석과 그이의 일가분들이 쓰시던 사적유물들이 원상 그대로 보존되여 있다”고 설명했다.

[류이근 기자의 평양 방문기] ①만경대

[%%TAGSTORY1%%]

지방 거주자 중 평양 방문할 수 있는 사람은 30%

논란이 되고 있는 김정일 생가(국내외 북한 전문가들은 그가 태어난 곳이 백두산 밀영이 아니라 러시아 하바로브스크 근처라고 얘기한다)와 달리 한국사나 북한사 전공자들에게 김일성 생가는 논란 거리가 아니다. 김일성은 현재의 만경대인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 남리에서 1912년 4월15일 아버지 김형직과 어머니 강반석 사이에서 삼 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만경대는 성지다.” 웬 성지? 북녘의 2천만 명 대부분에겐 의심할 수 없는(더군다나 공개적으론 불가능) 명제다. 최근까지 북녘에 살다가 내려온 한 새터민에게 “북녘 사람들에게 만경대란 어떤 의미가 있냐?”고 묻자,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성지’에 오는 여성들은 의례 한복 차림

북한은 김일성 생가가 있는 만경대 일대를 ‘만경대 고향집’이라 부르며 성역화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북한은 김일성 생가가 있는 만경대 일대를 ‘만경대 고향집’이라 부르며 성역화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성지라고 해서 모두 순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지방 거주자 중 평양을 방문할 수 있는 사람은 30% 안팎이라고 한다. 아무나, 아무 때나 ‘주체 공화국의 수도’ 평양에 들어갈 수 있는 당국의 승인 번호를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평양의 만경대구역 안에 있는 만경대 고향집을 “북쪽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서 참배(해야)하는 곳”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래서 틀린 말이다.

집단 순례를 온 여성들은 거의 한복을 차려 입었다.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한 새터민에게 물어봤더니, “그런 곳에 가면 으레 그렇게 입고 가는 것으로 생각해서 한복을 입고 간다”고 말했다. 한복이 강제나 원칙은 아니다.

서로 마주치지 않게 능수능란하게 조정

성지와 관광지의 차이는 크다. 경건하게 생가와 바로 옆 김일성의 항일무장독립투쟁사를 전시해 놓은 사적관을 둘러보는 북녘 사람들과 달리 남녘 사람들은 부지런히 셔터를 누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안내원들의 능수능란한 조정때문인지 북쪽의 일반 단체 순례객들과 남녘 방문객들이 섞여 관람하는 일은 없다.

성지는 신화가 깃든 곳이다. 때론 실제 그렇기도 하겠지만 불세출의 영웅은 언제나 어려운 역경을 딛고 일어선다. 생가는 그런 신화의 상징적인 공간이다.

메시지의 핵심은 청빈한 생활

평양 만경대 김일성 생가를 방문한 어린이들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평양 만경대 김일성 생가를 방문한 어린이들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만경대 고향집엔 1900년대 초반 일제하 북녘의 소박한 농기구와 살림 기구들이 전시돼 있다. 찌그러진 항아리도 눈에 띈다. 안내원은 김 주석의 모친이 잘못 구워져서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은 항아리를 싸게 사 온 것이라고 말했다. 한 북한 전문가가 재밌는 해석을 내렸다. “만경대 메시지의 핵심은 청빈한 생활이다.” 만경대 고향집엔 무산 계급 출신의 김일성이 어린시절 시련을 딛고 청빈한 생활 속에서 조국 광복의 항일투쟁의 정신을 키워왔다는 메타포어가 숨겨진 곳이다.

강정구 교수 방명록 파문…‘떳떳한’ 방문과 ‘그렇지 않은’ 방문

남쪽에선 만경대를 북쪽 김일성 주석에 대한 우상화 작업의 뿌리쯤으로만 인식한다. 그래서 일까? 남쪽 사람들에게 만경대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6년 전, 강정구 동국대 교수는 만경대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처벌 받았다. 평양에서 열린 민족통일대축전 기간 중 만경대를 방문해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는 방명록을 남긴 게 문제였다.

지난 5월13일 평양을 다녀온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나의 방북은 이례적으로 언론이 동행취재해 모든 행적이 공개된 투명한 방북이었다. 만경대도 떳떳하게 방문했다”고 말했다. 만경대 방문에 ‘떳떳한 방문’과 ‘그렇지 않은 방문’이 존재한다는 남쪽의 현실을 우회적으로 말해준다.

잣대 따라 언제든 발목…일그러진 거울

‘그렇지 않은 방문’에 대한 해석권은 전적으로 남쪽 공안과 보수 언론 및 정치세력이 갖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민주노동당 방북단이 만경대를 방문한 것을 먼저 공개하지 않은 걸 문제 삼기도 했다. 비슷한 일들이 언제든 다시 만들어질 수 있다.

남쪽 방문객들에게 필수코스인 북쪽 관광지에 남쪽의 정치적인 덫이 놓여 있다. 대부분의 남쪽 관광객들은 만경대뿐만 아니라 만수대 언덕에 있는 김일성 동상 앞에서 체제 우월성을 확신하며 자신감 있게 김일성 우상화에 냉소를 보내면서도, 동시에 남쪽의 정치적인 덫을 의식해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 역사와 신화가 짬뽕된 만경대는 북쪽의 성지이면서도, 남쪽 사회엔 자신을 비추는 ‘일그러진 거울’이다.

평양= 영상, 글 류이근 <한겨레21> 기자 ryuyigeun@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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