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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김정은 초기 개혁정책, 북미회담 결렬 뒤 후퇴 안타까워”

등록 2023-09-03 18:02수정 2023-09-03 19:15

[짬] ‘일본의 한반도 전문가’ 히라이 히사시 교도통신 객원논설위원
히라이 히사시 교도통신 객원논설위원. 사진 히라이 히사시 제공
히라이 히사시 교도통신 객원논설위원. 사진 히라이 히사시 제공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 집권 초인 2012년부터 ‘인민생활 향상’을 강조해 개혁지향적 정책을 기대했는데, 현실에선 인민생활 향상이 눈에 띄지 않는다. 2019년 2월 조-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정책 방향이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안타깝다.”

일본의 대표적인 한반도 문제 전문 원로 언론인인 히라이 히사시(71) 교도통신 객원논설위원의 말이다. 히라이 위원은 최근 ‘김정은 정권의 지도이념 변천’(한울)이라는 제목의 연구서를 펴냈다. 이를 계기로 지난 8월25일 일본 도쿄에 있는 그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10년간 이데올로기 집중 분석한
‘김정은 정권의 지도이념 변천’ 펴내
친인민성 강조한 인민대중제일주의
2019년 이후 반개혁적 ‘통치이론’화

핵개발, 군이 주도한 김정일과 달리
군 영향력 약화시키고 당이 주도
“선군으로부터 이탈한 김정은 10년”

히라이 위원은 1975년 교도통신에 입사했고, 1983~1984년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1989년 서울특파원으로 서울에 온 뒤 2007년 서울지국장을 마칠 때까지 한반도 문제 취재·보도에 집중했다. 1999~2002년 베이징특파원을 하느라 한국을 떠났으나, 그때도 베이징에 근거지를 둔 ‘북한 전담’ 특파원으로 일했다. 베이징특파원이던 2002년 선양 일본총영사관 탈북민 진입 사건 보도로 중국 정부의 눈밖에 나서 더는 베이징에 있을 수 없어 다시 서울지국장으로서 한반도 문제를 다뤘다. 그러니 20년 가까이 한반도 문제만 파고든 셈이다. 그는 “1995년부터 2007년까지 12년 동안은 (집이 있는) 일본에 가지 못했다”며 웃었다.

그는 현장 취재 기자로 지낸 시간의 대부분을 한반도 문제 취재에 쏟아부은 까닭을 따로 밝히지 않았다. “기자는 기자의 취재에 응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적인 답변이 있었을 뿐이다. 다만, 그가 굳이 밝히지 않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의 역사적 뿌리를 가늠할 실마리는 있다.

“내가 학생 때 일본에서 ‘조선문제’란 곧 재일교포 문제였다. 그런데 1970년대 김대중 납치 사건, 민청학련 사건, 동아일보 백지 광고 탄압 사건, 문세광 사건 등을 겪으며 일본사회가 한국의 민주화와 상당한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됐다.” 그는 왜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짧게 덧붙였다. “1973년 대학 3학년 때 한국을 여행했는데 ‘재밌다’고 생각했다”. 히라이 히사시라는 사람과 한국의 인연은 적어도 50년 세월을 견뎌낸 깊고 질긴 것이다.

이번 책은 히라이 위원이 2021~2022년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빙연구위원으로 한국에 머물 때 썼다. 애초엔 “김정은 시대 전체를 아우르는 책을 쓰려 했는데 자료 부족으로 우선 이데올로기에 집중해서 분석하는 책을 썼다”고 한다.

히라이 위원은 ‘김정은 정권 10년’의 지도이념(이데올로기)을 추적한 책에서 이른바 “김정은 동지의 혁명사상”의 알짬을 ‘2+1’로 정식화했다. 순수 이데올로기 차원에선 “인민대중제일주의”와 “우리 국가제일주의”, 현실정치를 아우르면 “우리 국가제일주의”를 떠받치는 “국방력 강화”가 덧붙여진다. ‘인민대중제일주의+우리국가제일주의(+국방력 강화)’다.

히라이 위원은 김정은 정권의 이데올로기 가운데 특히 “인민대중제일주의”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뒤 첫 공개 육성 연설인 “위대한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 탄생 100돌 경축 열병식”(2012년 4월15일) 연설에서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며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이라고 밝혔다. 히라이 위원은 이를 두고 김정은 위원장이 “정권의 친인민성을 강하게 어필했다”고 짚었다. 하지만 그는 “인민생활 향상”이라는 김 위원장의 공개 약속은 현실에서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정책은 ‘개혁 지향’과 반대 방향으로 흐르고 있고, ‘친인민성’을 강조한 “인민대중제일주의”는 “인민을 생각하는 수령에 인민이 보은해야 한다”는 ‘통치이론’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는 것이다.

“인민대중제일주의”가 김정은 위원장 집권 초부터 강조돼온 반면, “우리 국가제일주의”는 집권 중반인 2017년 11월에서야 노동신문 등 북한 언론에 처음 등장했다. 그리고 ‘두 개의 조선’을 지향하는 듯한 “우리 국가제일주의”라는 이데올로기는 ‘핵무력’을 핵심으로 한 “국방력 강화”로 안받침됐다. 다만 히라이 위원은 김정일 시대와 달라진 김정은 시대의 핵개발 기반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일 시대의 “군에 의한 선군”이, 김정은 시대엔 “당에 의한 선군”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김정은 시대엔 군이 아닌 노동당 군수공업부가 핵·미사일 개발을 주도해, 핵 개발은 지속하되 군의 영향력은 약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김정은 10년을 “선군으로부터 이탈 10년”이라 부르는 까닭이기도 하다.

히라이 위원의 잠정 결론은 이렇다. “김정은 시대의 지도이념이 인민의 지지를 얻으려면 북한 인민이 ‘생활이 좋아졌다’라고 실감할 수 있을 정도의 ‘인민생활 향상’과 경제발전이 필수적이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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