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사의가 반려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양도소득세 대주주 요건을 10억원으로) 현행대로 가는 것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오늘 사의 표명과 함께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오후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갑자기 사표 제출 사실을 밝히자 회의장엔 순간 정적이 흘렀다.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나서 사표를 제출했다고 불쑥 공개했기 때문이다.
첫번째 질문자로 나서 홍 부총리와 문답을 주고받던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직서’라는 말이 홍 부총리 입에서 나오자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뜨며 “갑자기 거취 문제까지 말씀하셔서 놀랍고도 좀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곧바로 수습에 나섰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홍 부총리의 발언 직후 기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홍 부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것은 사실이나 대통령이 바로 반려하고 재신임했다고 밝혔다. 청와대의 설명을 들어보면, 홍 부총리는 이날 오전 10시에 시작한 국무회의가 끝난 뒤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다. 홍 부총리는 이 자리에서 직접 작성한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대통령께서는 격려하시면서 신임을 재확인하고 반려하셨다”고 강 대변인은 전했다.
그러나 의문은 남는다. 홍 부총리가 이미 대통령의 재신임을 받았는데도 사직서를 낸 사실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강 대변인은 “홍 부총리가 청와대의 반려 사실 공식 발표(2시58분)를 국회 기재위에 출석한 상태여서 알지 못했다. 공식 발표를 확인하지 못한 채 대통령과의 면담 및 발표 사실을 확인해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 또 “대통령의 동선이나 인사권에 관한 사안은 공직자로서 보안을 유지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즉 홍 부총리는 사직서 반려 사실을 청와대가 공개한 것을 몰랐기 때문에, 대통령으로부터 재신임받았다는 것을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홍 부총리의 답은 이와 달랐다. 이날 기재위 회의에서 양경숙 민주당 의원이 “대통령이 (홍 부총리의 사직서를) 반려했다는 소식도 들었느냐”고 묻자 “아니다. 국회에 오느라 듣지 못했다”고 했다. 다만, 홍 부총리는 기재위 회의 뒤 기자들이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사직서가 반려됐냐고 묻자 “인편으로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홍 부총리가 여전히 사의를 거두어들이지 않은 상태에서 인편을 통해 다시 대통령 메시지를 전달받았다는 설명은 가능하다.
이를 종합해볼 때 홍 부총리로선 ‘사직서 제출 사실’ 공개를 통해 당정청 회의에서 기재부가 주장해온 정책 일관성을 관철시키지 못한 데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자신에 대한 문 대통령의 신임을 재확인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홍 부총리는 사의 표명과 대통령의 재신임이 짜여진 각본이라는 의혹에 대해선 불쾌감을 드러냈다.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이 “외부에서 ‘짜고 치는 고스톱이냐'는 정도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부총리의 언행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자 홍 부총리는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저에 대한 지나친 모욕”이라고 반박했다.
이완 김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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