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국방부 차관(가운데)이 24일 국회 본청에 있는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실을 방문해 북한 해역 실종 선원 피격 사건에 대해 보고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북한군에 의한 어업지도원 총격 사망 사건과 관련해 야당이 제기하는 의혹 중 하나는 청와대와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을 고려해 사건 공개를 일부러 늦췄느냐다. 국제사회에 한국전쟁 종전선언에 대한 지지를 호소한 문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은 23일 새벽 1시 반께부터 40여분에 걸쳐 사전 녹화된 영상으로 이뤄졌는데, 공교롭게도 이 시각 청와대에서 서훈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관계장관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야당은 문 대통령 연설이 있고 하루 이상이 지난 뒤에야 공식 발표를 한 것에 정치적 의도가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청와대는 첩보들을 종합해 신빙성 있는 정보인지를 판단하는 데 시간이 걸린 것일 뿐, 의도적으로 보고나 발표를 늦춘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청와대에서 23일 새벽 관계장관회의가 열린 것도 수집된 첩보가 대통령에게 보고할 만큼 신뢰할 만한 것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는 게 청와대 쪽 설명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보의 신뢰성 판단과 사실관계 파악에 시간이 걸렸다. 고의로 발표를 지연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했다.
24일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어업지도원의 총격 사망과 주검 훼손 사건에 관해 보고받은 것은 모두 네차례다. 첫 보고는 실종 사건 이튿날인 22일 오후 6시36분에 서면으로 이뤄졌다. ‘어업지도원이 서해상에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고가 일어나 군이 수색 중’이라는 것과 ‘북쪽이 실종자를 해상에서 발견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서면보고 4시간 뒤인 밤 10시30분께 청와대는 ‘북한이 월북 의사를 밝힌 실종자를 사살한 뒤 주검을 훼손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서훈 국가안보실장은 23일 새벽 1시에서 2시30분까지 노영민 비서실장과 박지원 국정원장, 이인영 통일부 장관, 서욱 국방부 장관 등을 청와대로 불러 관계장관회의를 열었다. 회의가 끝나고 6시간이 지난 23일 아침 8시30분 안보실장과 비서실장이 문 대통령에게 30분 동안 전날 파악한 첩보를 대면보고했다. 문 대통령은 이때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고 북한에도 확인하라. 만약 첩보가 사실로 밝혀지면 국민이 분노할 일이다. 사실관계를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알리라”고 지시했다. 같은 날 오후 4시35분 청와대와 정부는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북한에 사실관계 확인을 요구하는 통지문을 보냈으나 북한은 답이 없었다. 그리고 이날 밤 10시50분 실종 공무원의 피격 사실을 전하는 첫 언론 보도가 나왔다.
이튿날인 24일 아침 8시 다시 관계장관회의가 열렸다. 이후 오전 9시 노 비서실장과 서 안보실장은 문 대통령에게 ‘어업지도원이 북한군의 총격을 받아 숨졌고, 주검이 훼손됐다’는 첩보가 신빙성이 높다고 대면보고했다. 문 대통령은 이에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해 정부 입장을 정리하고 현재까지 밝혀진 내용을 국민에게 있는 그대로 발표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24일 오후 네번째 보고를 노 비서실장과 서 안보실장에게 받고 “군은 경계태세를 더 강화해 국민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만반의 태세를 갖추라”고 했다.
‘사건의 내용을 알고도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종전선언 지지를 호소한 것 아니냐’는 야당의 비판에 청와대 관계자는 “연설은 15일에 녹화해 18일 이미 유엔에 보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이 문 대통령의 연설 내용에 반영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성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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