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및 유족 초청 오찬에 앞서 독립운동가 후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안중근의 증손 토니 안씨, 김규식의 손녀 김수옥씨, 박은식의 손자 박유철씨, 이회영의 손자 이종광씨, 이상룡의 증손자 이항증씨. 윗줄 왼쪽부터 허위의 고손녀 소피아씨, 안중근의 외증손 이명철씨, 최재형의 증손 쇼루코프 알렉산드르 올레고비치씨, 문 대통령, 김 여사, 이회영의 손자 이종찬씨, 이동휘의 증손 황엘레나씨, 피우진 보훈처장.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은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관해 “(한-일) 양국 간 외교적 해법으로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우리 자신과 일본을 포함한 전세계가 전체 여성들의 성폭력과 인권 문제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굳은 각성과 교훈으로 삼을 때 비로소 해결될 문제”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충남 천안 국립 망향의 동산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에서 “저는 이 문제가 한-일 간의 외교 분쟁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일 양국 간의 역사 문제에 그치지 않고 전시 여성 성폭력의 문제, 인류 보편적 여성 인권의 문제”라고 말했다. 한-일 관계 등을 고려해 박근혜 정부 시절 맺은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재협상을 요구하지는 않겠으나, 인권을 유린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근본적인 반성을 거듭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문 대통령은 “27년 전 오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학순 할머니가 생존자 중 처음으로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했다. 그로부터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할머니들의 당당하고 용기 있는 행동이 이어져 이 뜻깊은 자리를 만들었다”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할머니들은 자신의 고통과 아픔을 승화시켜 이 순간에도 인권과 평화를 실천하고 계신다”며 “진실을 외면한 역사를 바로잡고 정의를 세우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이날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외교적 해법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밝힌 것은,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한-일 간 외교 문제가 아닌 보편적 여성 인권의 문제로 다루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또 지난해 8·15 경축사와 올해 3·1절 기념사와는 달리 일본 정부를 직접 겨냥하지 않았다. 진정한 사과와 반성을 할 의사가 없는 일본에 대한 메시지는 줄이는 대신, 우리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국가기념일 지정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연구소 발족 △관련 교육 등 후속조처를 강화해 이 사안에 대해 국제사회의 평가를 받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일본에 더 근원적인 각성을 촉구하면서, 한-일 관계는 미래지향적으로 가자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이와 함께 지난해 12월27일 ‘한-일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이하 티에프) 활동과 1월 발표한 정부 후속 조처의 이행 방안을 놓고 해온 내부 정책 재검토를 마치고 이제 실천적 조처를 강조하는 모양새다. 문 대통령은 “기록의 발굴부터 보존과 확산, 연구지원, 교육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며 우리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날 행사장에 도착하자마자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곽예남 할머니들과 만나 반갑게 포옹한 뒤 묘역에 헌화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이날 제막한 추모비를 언급하며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 조금이나마 한이 풀리는 것 같다”며 “먼저 가신 할머니들이 지켜보고 있다. 정부가 무관심한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고 꼭 전해주겠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소재로 한 영화 <허스토리>의 민규동 감독이 애국가를 선창했고, 4·27 남북정상회담 때 공연했던 오연준군과 천안아산청소년합창단이 ‘고향의 봄’을, 뮤지컬 배우 장윤아씨가 ‘가시리’ 등을 불렀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 <귀향> 등에 출연한 배우 손숙씨는 헌시를 낭송했다.
김보협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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