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후 청와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할머니들과 오찬을 함께 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박근혜 정부 당시 일본과 맺은 12·28 ‘위안부’ 합의에 대해 “할머니들의 의견을 듣지도 않고 뜻에 어긋나는 합의를 해 죄송하다”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사과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이용수·길원옥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8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본관 충무실 현관에 나와 김정숙 여사와 함께 할머니들을 맞이했다. 문 대통령은 “할머니들을 전체적으로 청와대에 모시는 게 꿈이었는데 오늘 드디어 한자리에 모시게 되어 기쁘다”며 “국가가 도리를 다하고자하는 노력으로 봐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의 12·28 합의에 관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정식으로 사과했다. 문 대통령은 “과거 나라를 잃었을 때 국민을 지켜드리지 못했고, 할머니들께서 모진 고통을 당하셨는데 해방으로 나라를 찾았으면 할머니들의 아픔을 보듬어 드리고 한도 풀어드렸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면서 “오히려 할머니들의 의견도 듣지 않고 할머니들의 뜻에 어긋나는 합의를 한 것에 대해 죄송하고 대통령으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합의는 진실과 정의의 원칙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정부가 할머니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한 내용과 절차가 모두 잘못된 것이다. 대통령으로서 지난 합의가 양국간의 공식 합의였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으나 그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천명했다”며 “할머니들께서 오늘 편하게 여러 말씀을 주시면 정부 방침을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했다.
할머니들은 문 대통령에게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죄를 받아 달라고 부탁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12·28 합의 이후 매일 체한 것처럼 답답하고 한스러웠다. 대통령께서 합의가 잘못됐다는 것을 조목조목 밝혀주어 가슴이 후련했고, 고마워 그날 펑펑 울었다”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사과, 법적 배상을 26년이나 외쳐왔고 꼭 싸워 해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정부가 요구하는 평화의 소녀상 철거에 관해서는 “소녀상이 무서우면 사죄를 하면 된다. 국민이 피해자 가족이다”라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면 세계 평화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이옥선 할머니는 “우리가 모두 90살이 넘어 큰 희망은 없지만 해방 이후 73년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도 사죄를 하지 않는다”며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겠나. 사죄만 받게 해달라. 대통령과 정부를 믿는다”고 말했다. 또다른 이옥선 할머니도 “우리의 소원은 사죄를 받는 것이다. 사죄를 못받을까봐 매일매일 걱정이다. 대통령께서 사죄를 받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13살 때 평양에서 위안부로 끌려간 길원옥 할머니는 인삿말 대신 가요 ‘한많은 대동강’을 부른 뒤 문 대통령 내외에게 지난해 발매한 음반 ‘길원옥의 평화’를 선물 했다.
오찬 뒤 김정숙 여사는 할머니들에게 목도리를 직접 매주었다. 문 대통령 내외는 ‘대통령과 사진을 찍는 것이 가장 하고 싶었다’는 할머니들의 요청에 따라 한명 한명과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청와대는 “할머니들이 있는 ‘나눔의 집’에 의전 차량을 보내 청와대까지 경찰 호위 아래 국빈 이동 때와 같은 최고의 예우로 할머니들을 모셔왔다”고 밝혔다. 청와대 쪽은 할머니들의 건강 상의 불편 사항에 대비해 비상 구급차도 별도로 배차했다.
오찬에 앞서 문 대통령은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가 수술을 앞둬 오찬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있는 김 할머니를 문병했다.
오찬에는 윤미향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와 지은희 정의기억재단 이사장,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 강경화 외교부장관, 정현백 여성가족부장관, 남인순 국회 여성가족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성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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