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①취임 뒤 100일만 vs 10개월 만에
17일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은 여러모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과 비교된다.
박 전 대통령의 취임 뒤 첫 기자회견은 2014년 1월6일에 열렸다. 신년 기자회견을 겸한 자리였다. 대통령에 당선되고 13개월, 취임 뒤 10여개월만에 열린 ‘진귀한’ 기자회견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당선 뒤 대통령직인수위 시절에도, 정부 출범 이후에도 단 한 차례의 기자회견도 열지 않았다. ‘멸종’ 수준에 이른 기자회견은 박 전 대통령 ‘불통’의 상징이 됐다. 전임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 직후부터 1년 간 15번에 걸쳐 기자회견이나 ‘국민과의 대화’ 자리를 가졌었다.
박 전 대통령은 첫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는 사전에 의도된 것으로 보이는 표현을 써가며 통일의 경제적 효과를 강조했다. 반면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등에 대해서는 “국력 소모”, “재판중”이라는 말로 답변을 접었다. ‘국력 소모’라던 국정원 사건은 3년7개월만에 검찰 재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치·경제·사회적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업무 뒤 관저에서 무엇을 하느냐’는 대통령 개인생활과 관련한 ‘한가한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기르는 진돗개 이름까지 불러가며 의욕적으로 답변했다. “보고서를 보는 시간이 제일 많다”, “장관·수석과 수시로 통화하고 결정한다”, “국정의 최종 책임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개인 시간을 가질 여유가 없다”, “개인적 일과 국정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자나깨나 그 생각을 하고 거기서 즐거움과 보람을 찾는다”, “어떤 분들은 너무 숨 막히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적어도 저는 그런 식으로 지금 국정에 임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이후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와 이후 재판 과정을 통해 상당부분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드러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4년 1월6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이후 첫 새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②분야만 사전 조율 vs 각본대로 진행
박 전 대통령 재임 중 있었던 몇 차례 안 되는 기자회견은 매번 ‘사전 각본’에 따라 기자의 질문과 대통령의 답변이 미리 준비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문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은 다르다고 청와대는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 사회를 맡은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오늘 기자회견은 기자들이 자유롭게 묻고 자유롭게 답하는 토론방식으로 진행된다. 원활한 진행을 위해 청와대와 기자단 간의 질문 주제와 순서만 조율하고 질의 내용과 답변 방식은 사전에 정해진 약속이 없었음을 알려드린다. 따라서 대통령은 여러분이 어떤 질문을 할지 전혀 알지 못한다”고 공지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을 향해 “대통령님 긴장되시죠?”라며 가볍게 긴장을 푸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기자회견은 △외교·안보(연합뉴스, 아리랑TV, 한겨레) △정치(SBS, YTN, JTBC) △경제(머니투데이, 매일경제) 분야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지역언론(경기일보, 강원일보, 경상일보) △외신(CNN, NHK, NBC) △인터넷매체(오마이뉴스) 등 15개 매체에 질문권이 주어졌다.
이날 기자회견은 사전에 ‘디테일’한 부분까지 조율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실제 기자회견 후반부 자유질문 시간 때는 윤영찬 수석이 손을 든 기자나 매체를 알아보지 못하고 “빨간스웨터 입으신 기자님 질문하시죠?”라고 묻기도 했다. 하지만 신문·방송·통신 등 이날 질문 기회가 주어진 언론사들의 구성을 볼 때 청와대 자체적으로 어떤 매체에 질문권을 줄지 내심 준비했던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③일본 기자의 껄끄러운 질문 vs 일본은 배제
한반도 상황의 급박함을 고려한 탓인지 외신에게 3차례 질문권이 주어진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박 전 대통령 첫 기자회견 때는 외신기자들 사이에 ‘청와대가 자신들을 들러리로 세웠다’는 불만이 나올 정도였다. 당시 기자회견에는 청와대가 외신기자 클럽 소속 기자들과는 별도로 초청한 것으로 알려진 <로이터> 통신과 중국 관영 <시시티브이>(CCTV) 기자에게만 질문권이 주어졌다. 이를 알지 못한 일본 언론 등 일부 외신기자들이 회견 도중 계속 손을 들어 질문 기회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를 두고 한-중, 한-일 관계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이번 문 대통령 기자회견에선 먹구름이 낀 한-일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엔에이치케이>(NHK) 기자에게 질문권이 주어졌고, 한일 위안부 협상 재검토와 강제징용 보상 문제 등 껄끄러운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윤영찬 수석은 기자회견이 끝난 뒤 “콘티 없이 기자분들을 지명하다보니 생중계라는 압박에 쫓기는 부분이 있었다. 정해진 시간에 맞추다보니 사회·문화 부문(질문)에 대한 명확한 어나운스를 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 “각 매체를 고르게 배려하려했으나 결과적으로 소홀해진 매체군도 있다. 다음 기자회견엔 꼭 반영하도록 하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취임 100일을 맞은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첫 기자회견에서 미소짓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