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이어 동아일보 고소…세월호 관련 한겨레·CBS도
청와대가 정윤회(59)씨의 국정개입 의혹 사건을 보도한 언론사들을 상대로 고소를 남발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언론의 추적과 공적 감시 기능을 위축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박근혜 대통령 비선실세 의혹을 받는 정윤회씨 동향 문건이 김 실장 지시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취지의 보도를 한 <동아일보> 기자를 지난 8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이른바 청와대 ‘문고리 3인방’ 등 청와대 비서진 8명이, 지난달 28일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의혹을 담은 청와대 내부보고서를 보도한 <세계일보> 기자 등을 같은 혐의로 고소한 지 열흘 만이다.
두 경우 모두 보도 당일 오전,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나서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힌 뒤 곧바로 고소가 이뤄졌다. 사실상 청와대가 고소 주체지만, 비서실장이나 비서관 등 개인이 나선 것은 정부 또는 국가기관은 형법상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명예훼손죄를 악용해 언론을 상대로 고소를 남발하는 일은 이명박 정부를 거쳐 박근혜 정권 들어 더욱 심해지는 모양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청와대 관계자가 언론사나 기자를 대상으로 낸 민형사소송은 ‘세월호 참사 보도’와 관련해 <한겨레>와 <기독교방송>(CBS)을 상대로 한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포함해 알려진 것만 13건에 이른다.
대법원 판례에 비춰보면, 청와대 관계자들의 고소가 실제 언론사의 형사 처벌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이 성립하려면 ‘비방할 목적’이 있었는지가 입증돼야 하나, 이들 언론 보도가 특정 인사 비방 목적으로 쓰였다고 볼 여지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이들 보도 자체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더라도 이를 사실로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으면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
청와대가 언론을 상대로 고소를 남발하는 것은 비판적 보도를 하면 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이른바 ‘위축 효과’를 노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과)는 “무죄 판결난 <피디(PD) 수첩>의 광우병 보도 등 공익을 위한 보도가 국가기관이나 공직자 등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며 “청와대가 이런 사실을 알고도 고소를 이어가는 것은 언론을 압박해 (전체 언론의) 관련 보도를 위축시키게 하려는 ‘입막음’ 의도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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