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7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새누리당 지도부 및 당 소속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청와대 오찬 분위기 어땠기에
“예상보다 발언 세서 멍했을 정도”
‘꿀먹은 여 지도부’ 비판에 하소연
“예상보다 발언 세서 멍했을 정도”
‘꿀먹은 여 지도부’ 비판에 하소연
“대통령이 초반에 그렇게 강하게 정리해버리는데 그 앞에서 무슨 말을 하겠나….”
박근혜 대통령과의 지난 7일 청와대 오찬에 참석한 새누리당 의원들은 8일, ‘비상한 시국에 청와대까지 가서 밥만 먹고 온 것이냐’는 지적에 이런 반응을 보였다. 이날 대부분의 언론은 기사와 사설 등을 통해 전날 박 대통령이 보인 상황 인식의 문제점과 더불어, 대통령 앞에서 할 말 못한 새누리당 지도부와 의원들을 비판했다. 당 안팎에서 박 대통령의 폐쇄적 국정 운영 방식 전환과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60명이 넘는 여당 의원들은 대통령 앞에서 쓴소리는커녕 “대통령 각하”, “우리는 한 몸”, “파이팅”만 외치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오찬에 참석한 의원들은 “박 대통령의 발언과 태도가 너무 강도 높고 자신감 넘쳐서 오찬 전체의 분위기를 압도해버렸다”고 입을 모았다. 한 의원은 “박 대통령의 모두 발언이 예상보다 훨씬 세서 잠시 멍했을 정도였다”며 “거기다 대고 누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냐”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오찬 인사말에서 “찌라시에 나오는 얘기들에 나라 전체가 흔들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흔들리지 마라”, “여당에서 중심을 잘 잡아달라”는 주문을 쏟아냈다. 한 참석 의원은 “대통령 입에서 ‘찌라시’라는 표현이 나오는 걸 듣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오찬을 마치고 돌아오는 단체 버스 안에서는 의원들 사이에 “진짜 대통령 말대로 (사실무근으로 판명)되면 좋지…”라는 말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당 지도부와 함께 앉은 헤드 테이블에서도 오찬을 함께 한 두시간 내내 이번 사태에 대해 매우 적극적으로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이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을 지칭하는 “3인방”이라는 단어와, 박 대통령의 동생인 “지만”을 언급할 때는 목소리가 높아져 주변의 테이블까지 들릴 정도였다고 한다. 한 의원은 “대통령이 평소에 말씀을 많이 안 하시고 주로 듣는 쪽이었던 걸로 아는데, 이번에는 때로는 웃어가며 계속 말씀하시더라”고 말했다.
서청원 최고위원 등 6명의 의원에게 오찬을 마무리하며 발언 기회가 주어졌으나, 대부분 공무원연금 개혁 등에 힘을 합치자는 등의 내용이었다. 한 재선 의원은 “모임의 성격이 예산안 처리에 대한 격려 차원이었기 때문에 다른 말을 할 분위기는 아니었다”며 “당 지도부가 따로 얘기하면 몰라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 지도부도 박 대통령에게 비선·실세 논란과 관련한 별도의 조언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김무성 대표가 인사말에서 “이런 기회를 통해서 잘못된 것을 시정하고…”라고 언급하는 수준이었다. 김 대표의 발언은 ‘이번에도 아무 말 못 하면 김무성도 죽고 당도 죽는다’는 주변의 건의를 받아들여 준비한 ‘나름의 한칼’이었다고 의원들이 전했다. 지난 10월 중국에서의 개헌 발언으로 청와대로부터 집중포화를 맞고 행보를 자제해온 김 대표가 이번 사태는 매우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의도와는 달리 그 발언이 외부에 부각되지 못해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말이 나온다.
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 사진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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