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51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마친 뒤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정윤회씨 부부와 관련된 문화체육관광부 인사를 직접 챙겼다는 <한겨레> 보도(12월3일·4일치 1면)와 관련해 청와대가 5일 박 대통령의 ‘인사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정했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문체부 국·과장의 좌천 인사를 지시한 것은 민정수석실의 보고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지만, 당시 상황이나 청와대 운영 시스템에 비춰 보면 앞뒤가 안 맞아 면피성 해명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지난해 7월23일 국무회의에서 유진룡 당시 문체부 장관이 체육단체 운영 비리와 개선 방안을 보고했지만 내용이 부실했고 체육계 비리 척결에 진척이 없었다. 박 대통령은 민정수석실로부터 그 원인이 담당 간부의 소극적이고 안이한 대처에 따른 결과라고 보고받았다”며 “그 뒤 8월21일 유 장관에게 적극적으로 적폐 해소에 속도를 내라고 지적했고, 이에 따라 유 장관이 적임자로 인사 조치를 한 걸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유 장관의 보고 내용이 부실하고 체육계 비리 척결에 진척도 없어서 책임을 물었고, 그 결과에 따른 인사는 장관이 알아서 한 것이라는 식의 전형적인 책임 떠넘기기식 설명이다. 하지만 청와대의 설명엔 급조된 듯이 허술한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대통령이 ‘비선 정보’에 의존한 게 아니냐는 비판을 의식한 듯 “민정수석실로부터 담당 간부의 안이한 대처를 보고받았다”고 밝힌 부분이다. 하지만 민정수석실이 중요한 범죄나 사고도 아닌 일개 부처 국·과장의 ‘안이함’을 보고했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또 이 보고 내용을 박 대통령이 직접 수첩에 적어놓고 장관에게 담당 국·과장의 이름을 부르며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고 인사 조처를 지시했다는 것은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청와대는 불과 며칠 전 ‘정윤회씨의 국정개입’이라는 중대한 사안에 대한 공직기강비서관의 보고서는 김기춘 비서실장이 구두 보고를 받고 ‘찌라시’여서 무시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민정수석실에서 보고한 문체부 국·과장의 안이한 태도는 대통령에게 직보가 이뤄졌는데, 측근으로 지목된 이의 국정개입 의혹은 무시했다는 말이 된다.
더구나 해당 국·과장은 승마협회에 대한 사전 조사 때 어느 한쪽의 개혁이 아닌 전면적인 정화를 지적하는 등 특별히 문제가 될 만한 일을 한 적도 없다. 또 청와대의 설명대로라면 7월23일 장관이 보고한 ‘체육단체 운영비리 개선 방안’에 대해 박 대통령은 채 한 달도 안 된 시점(8월21일)에 ‘체육계 비리 척결에 진척이 없다’고 판단해 인사 조처를 지시한 것이 된다.
당시엔 문체부가 체육 전반에 대한 감사 계획을 작성한 뒤 아직 감사는 시작도 하지 않은 시점이었다. 좌천된 노아무개 국장과 진아무개 과장은 청와대에서도 승인한 바 있는 ‘스포츠비전 2018’을 직접 기획해 기자회견(8월26일)까지 한 뒤 불과 1주일도 안 돼 교체됐다. ‘안이함’ 탓으로 보기 어려운 대목이고, 유 장관도 이들의 인사 조처에 대해 개인적으로 미안해했다고 한다.
또 박 대통령은 유 장관에게 이들 두 공무원의 좌천성 인사를 지시한 이후 곧바로 이틀 뒤에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을 통해 이들의 인사가 진행됐는지를 물어봤다고 한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일개 부처 국장·과장 인사를 이틀 간격으로 확인했다는 것인데, 청와대의 설명처럼 단순히 ‘안이함’에 대한 질책으로 보기엔 박 대통령이 너무 적극적이었다는 점도 의문이다.
청와대의 이런 허술한 해명은 당시 박 대통령의 지시를 직접 받았던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이 보도 내용을 모두 인정하는 등 여론의 관심이 커지자 뒤늦게 수습 차원에서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해명이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많고, 무엇보다 현 정부 출범 때부터 장관을 맡았던 이가 박 대통령의 비선 인사 방식에 ‘직격탄’을 날린 탓에 박 대통령으로서는 정치적 상처가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석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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