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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대통령실

무책임한 대통령과 ‘매맞는 소년’

등록 2013-11-05 21:33수정 2013-11-06 16:00

김규원 기자
김규원 기자
[초유의 ‘정당해산’ 청구] 현장에서
15~17세기 영국에 ‘매맞는 소년’(휘핑 보이)이란 제도가 있었다. 왕자가 잘못하는 경우, 왕자 대신 매를 맞는 소년을 말한다. 그런데 한국에도 이런 ‘매맞는 소년’이 하나 있다. 바로 ‘국무총리’다.

박근혜 정부는 5일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 심판 청구안’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국무회의가 아니라, ‘매맞는 소년’ 정홍원 총리가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 이를 처리했다. 박 대통령은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저 멀리 영국에서 ‘전자 결재’만 했다. 이제 그 무거운 짐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박 대통령은 벌써 두번째로 ‘매맞는 소년’을 내세웠다. 이번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가기관들의 대선 개입 의혹이 터져나오자, 지난 10월28일 정 총리는 “사법부의 판단과 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필요한 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청와대에서 초안을 잡았지만, 이 사건의 당사자로 추정되는 대통령은 나서지 않았다. 대선과 아무 관계없는 ‘매맞는 소년’이 나섰다. 다음날 대부분의 매체들은 박 대통령을 ‘무책임 대통령’이라고 비판하지 않았다. 정 총리를 ‘대독 총리’라고 조롱했다. 이러고도 이 사안이 가라앉지 않자 박 대통령은 31일에야 자신의 입으로 이 사안을 거론했다.

이런 ‘매맞는 소년’은 과거 정부에서도 많았다. 2012년 6월 이명박 대통령은 이번 경우와 똑같이 외국 방문 중에 당시 김황식 총리 주재의 국무회의에서 ‘한-일 군사비밀정보 보호협정’을 긴급 안건으로 처리했다. 영문도 몰랐던 김 총리는 뭇매를 맞았다. 2009년 9월엔 정운찬 당시 총리를 내세워 행정도시(세종시) 백지화를 추진하다가 좌절되자, 결국 정 총리를 ‘속죄양’으로 삼았다.

한국의 대통령 중심제에서 총리는 대통령을 대행할 뿐 아무런 독립적 권한이 없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정당 해산 심판 청구’와 같은 중대 사안을 총리에게 대행시키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박 대통령은 더이상 ‘매맞은 소년’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말아야 한다. 스스로 권한을 행사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길 바란다. 시민들은 ‘망석중이’ 책임 총리가 아니라, 당당한 책임 대통령을 보고 싶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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