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변희수 하사가 지난해 3월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군인권센터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며 밝게 웃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기자회견을 후회하진 않았나요?”
“후회 안 했어요. 제가 원래 좀 낙관적인 편이에요.”
변희수 하사의 죽음이 알려지고 나서 그가 지난해 3월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했던 이야기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습니다. 군 복무 중 성전환 수술을 하고, 여군으로 복무를 이어가고 싶다고 밝힌 육군 부사관 변 하사에게 지난해 1월22일 육군본부는 ‘강제전역’ 결정을 내렸습니다. 지난해 1월 기자회견에서도 지난해 3월 인터뷰에서도 그가 원한 것은 한결 같았습니다. 성소수자의 인권과 자유를 쟁취하는 것, 그리고 군에 복귀하는 것. 하지만 ‘낙관적인 편’이라고 환하게 웃어 보이던 변 하사는 지난 3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그가 그동안 혼자 감내했어야 할 고통을 저로선 감히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의 죽음이 알려지자 정치권에서는 여야 할 것 없이 추모 메시지를 올렸습니다.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의원은 “우리 사회가 진로와 취업,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23살의 청년에게 너무 가혹했습니다. 정치인이자 어른으로서 너무 미안합니다”라고 했고, 같은 당 윤미향 의원은 “성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편견, 혐오가 사라지는 사회를 만드는 길에 당당히 뚜벅뚜벅 걷겠다”고 했습니다. 같은 당 이소영 의원은 “늦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보수정당인 국민의힘 김웅 의원도 “사람이 사람 좋아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영면하시길”이라는 짧은 글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변 하사의 고민을 ‘법과 제도’로 해결할 수 있는 ‘당사자’이기도 합니다. 그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표’를 생각하면 ‘제2의 변희수’를 막기 위한 입법엔 참여하기 어렵다는 것. 그것이 대다수 국회의원의 속내일 것입니다. 변 하사는 생전에 본인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여러 차례 얘기했습니다. 그럴 때 국회의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인식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한데 저 혼자로는 역부족이에요. 2000년대 초반에 하리수씨가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처음 커밍아웃을 한 이후로 그마나 온 게 이정도죠. 아마 저 혼자의 싸움만으로는 안 될지도 몰라요. 저 다음에 또 누군가가 나와야 인권 신장이 되고, 그래야 저희 같은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고 사회에 녹아들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변 하사, <한겨레> 인터뷰 중>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지난해 6월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 제정은 특별한 내용이 아닙니다. 성별, 장애, 나이,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등으로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건 어느 누가 들어도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 당연함이 왜 이토록 우리 사회에서는 ‘특별한’ 일이 되어야만 할까요. 고 변희수 하사에 앞서 지난 2월 녹색당 김기홍 성소수자운동 활동가도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는 한 언론인터뷰에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정치인들을 향해 이렇게 일침을 놓기도 했습니다. “
소모적 논쟁이니 나중에 사회적 합의를 하자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그냥 존재하는 사람이고, 그저 살아가는 건데 왜 존재에 대한 합의를 해야 하는 거죠? 논쟁을 할 필요가 없잖아요.”
국회의원들이 진짜 입법으로 ‘변희수의 비극’이 재발하는 상황을 막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일이 없어야겠지만, 우리 사회에 또 이런 일이 되풀이된다면 그때도 “안타깝다”는 말로 넘길지 궁금합니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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