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전 의원이 지난해 11월 충북 괴산군에 있는 자연드림파크에서 ‘우리 경제의 미래와 사회적 경제의 역할’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난지원금에 대한 이재명 지사의 주장이야말로 곡학아세의 전형적 사례”(1월31일 페이스북)
“이재명 지사의 경제정책은 ‘돈풀기’ 뿐인가?”(1월24일 페이스북)
“‘전 도민 10만원 지급’은 소득재분배 효과가 제로인 매표행위”(1월21일 페이스북)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운 여당 대선주자 2인의 아부 경쟁”(1월19일 페이스북)
“소득 하위 50% 지원이 옳다”(1월12일 페이스북)
“이재명 지사, 국민을 우습게 보는 조삼모사”(1월9일 페이스북)
“재난지원금, 반드시 시시비비를 가리자” (1월8일 페이스북)
“정말 어려운 분들에게 두 배, 세 배 드리자”(1월6일 페이스북)
한 달 새 8번. 이쯤이면 ‘스토킹’이라 불러도 별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국민의힘 소속 유승민 전 의원의 ‘이재명 때리기’ 얘기입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한국갤럽의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지난해 8월부터 줄곧 1위를 지키고 있는 대선판의 ‘원톱’입니다. 반면 유승민 전 의원은 지난 2017년 대선에서 6.8%를 득표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차기 선호도 조사에서는 줄곧 한 자릿수 초반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참고로 지난달 15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이재명 지사는 23%, 유승민 전 의원은 1%였습니다.
1월 한 달에만 ‘이재명 저격’ 8차례
‘1% 주자’가 ‘23% 주자’를 집요하게 공격하는 형세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집요하게 ‘센 놈’만 물고 늘어져 몸값과 인지도를 올리려는 ‘듣보잡 파이터’의 저잣거리 싸움판 전략일까요? 아니면 철학과 노선의 상극성에 따른 필연적 대립구도일까요? 궁금증이 동한 김에 유 전 의원이 올린 글을 유심히 들여다봤습니다.
유 전 의원이 가장 최근에 쓴 글은 지난 31일 페이스북에 올린 ‘이재명 지사의 곡학아세’라는 글입니다. 여기서 그는 “이 지사는 왜 10만원씩 똑같이 지급하는 반서민적 정책을 고집하는가? 그 이유는 두 가지일 것”이라며 “첫째, 대선을 앞둔 매표행위다. 이건 악성 포퓰리즘이다. 둘째, 재난기본소득을 이 지사가 주장하는 기본소득으로 끌고 가고 싶은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코로나 이후 기본소득을 쳐다볼 여유가 없다. 코로나로 힘든 국민들부터 국가가 도와야만 따뜻한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지사는) 상식을 벗어난 궤변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아첨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비판 수위를 한껏 끌어올렸습니다.
물론 유 전 의원이 이 지사의 재난기본소득 지급론을 비판한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이 지사가 2차 재난기본소득 지급을 확정한 뒤 유 전 의원은 “‘전 도민 10만원 지급’은 소득재분배 효과가 제로인 매표행위”(21일), “이재명 지사의 경제정책은 ‘돈풀기’ 뿐인가?”(24일)라는 글을 써 이 지사의 정책을 집중 공격했습니다. 1월 한 달에만 8차례나 이 지사를 비판했는데, 1월19일에 “100년 만의 세계사적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님께서 그 자리에 계신 게 얼마나 다행인가 다시 한 번 생각했다”고 쓴 이 지사의 글을 겨냥해 “북한방송을 보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심한 문비어천가”라고 비판한 것을 제외하고는 비판의 주제가 한결같습니다. 이 지사의 대표적 정책 브랜드로 자리 잡은 ‘보편 복지’입니다.
보수이면서 복지·증세 찬성하는 독특한 캐릭터
따지고 보면, 유 전 의원은 우리 정치사에 숱하게 등장했던 보수 정치인 가운데서도 그 이력과 캐릭터가 독특한 인물입니다.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연구위원으로 재직하다 지난 2000년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을 맡아 정치권에 들어왔습니다. 보수 성향이면서도 복지 확대를 무작정 반대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보수의 금기’인 증세 문제까지 건드려 정권 핵심부의 노여움을 산 적도 있습니다. 2015년 새누리당 원내대표 재직 시절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박근혜 정부의 정책 기조를 비판했다가 박 대통령의 눈 밖에 났고, 결국 2016년 20대 총선에서 친박계가 주도한 ‘공천 학살’의 희생양이 된 것은 유명합니다.
눈여겨볼 대목은 복지 확대와 증세에 찬성하는 그이지만, 복지 지출의 방식과 관련해선 소신이 뚜렷하다는 점입니다. 모든 국민에게 동등한 금전 혜택이 돌아가는 ‘보편 복지’를 일관되게 반대해온 것입니다. 굳이 그의 복지론에 이름을 붙여보자면, 지출 규모는 확대하되 그 수혜는 빈곤층과 사회적 약자층에 집중하는 이른바 ‘하후상박 복지론’(선별복지론)입니다. 이런 그에게 이재명 지사의 일관된 ‘보편 복지 제일론’은 선거를 앞두고 ‘돈 주고 표 사는’ 술책으로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유 전 의원 스스로도 자신의 ‘이재명 때리기’를 ‘경제와 복지를 잘 아는’ 보수 정치인의 ‘정치적 소명’ 정도로 생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유 전 의원의 스탠스는 철저하게 계산된 정치적 선택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합리적 보수주의자’로서 자신의 정책적 차별성을 도드라지게 만들어주는 ‘최적의 과녁’으로 이재명 지사를 선택했다는 얘기입니다. 이는 물론 철저하게 보수와 중도 유권자층을 겨냥한 전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1% 유승민’이지만, 정책과 콘텐츠로 여권의 ‘23% 이재명’에 밀리지 않고 싸울만한 상대는 자신뿐이라는 점을 꾸준히 어필해 정치적 존재감을 키우고, 이런 인지도와 평판을 발판 삼아 언젠가 지리멸렬한 보수의 대안으로 단숨에 도약하겠다는 구상인 것입니다.
취약한 대중성…‘1%의 기적’은 일어날 수 있을까?
전문가들 진단도 비슷합니다. 장성철 공감과 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전에는 유 전 의원이 대통령을 공격했다면, 지금은 임기가 끝나가는 대통령보다는 현재 1위 대선 후보 견제를 통해 ‘나도 대선후보’라는 점을 지지층에 어필하려는 전략”이라고 짚었습니다. 유승민 전 의원에게도 기회는 올 수 있을까요? 만약 온다면 그것은 ‘1%의 기적’이라 불러도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적은 ‘역동성’ 면에서 세계에서 둘째라면 서러울 대한민국 정치판에서는 드물잖게 벌어지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다만 그 기적을 현실화시키려면 유 전 의원 스스로 자신의 ‘취약한 대중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치밀한 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