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총격으로 사망한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형인 이래진 씨가 26일 국회에서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난 뒤 취재진과 인터뷰하며 심경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에서 피살된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원이 월북을 시도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군 당국이 밝혔지만 논란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특히 유가족들은 실종자를 구할 수 있었던 ‘골든타임’을 놓친 군 당국이 사태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월북자로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 쪽 총격으로 숨진 공무원의 형 이래진(55)씨는 27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동생이 남쪽 바다에 있었던 그 오랜 시간 동안 도대체 군은 무얼 했느냐”며 “우리 국민을 지키지 못한 군 당국이 오히려 동생을 월북자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전날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의 면담에서도 이런 억울함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동생이 실종 상태였던 지난 21~22일 군 당국이 어떤 보고 체계를 통해 수색 작업을 결정했는지 진상 공개를 요청하고 있다.
이씨 쪽은 특히 군 당국이 월북의 근거로 제시한 정황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군 당국은 숨진 공무원이 구명동의를 챙겨 입었고 부유물을 사용해 장시간 바다에 떠 있었던 점, 배에 슬리퍼를 벗어두고 간 점 등을 들어 월북으로 추정된다고 밝혀왔다. 이에 대해 이씨는 “세월호 사건 이후 배 안에서 구명동의를 입는 게 의무화됐다. 배에서 생활해온 공무원이 구명조끼를 입은 것이 어떻게 월북의 증거가 될 수 있느냐”며 “동생 빚이 몇천만원 정도에 불과했는데, 아직 학생인 두 자녀를 두고 월북을 선택했을 리가 없다”고 말했다.
숨진 공무원의 동료들도 평소 그가 북한과 관련한 말을 하거나 극단적인 시도를 할 만한 특별한 기색을 보이지는 않았다고 해경에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무원의 실종 경위 등을 조사하고 있는 해경은 어업지도선에 있던 희생자의 노트북과 소지품 등을 분석하고 있다. 해경은 또 국방부에 월북으로 판단한 근거 자료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한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월북 시도를 둘러싼 논란은 숨진 공무원이 북한 쪽에 월북 의사를 표명했다는 정황이 공개될 때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군 당국은 “숨진 공무원이 북한 쪽에 발견될 당시 월북 의사를 표명한 첩보가 있다”며 이를 월북 시도의 유력한 근거로 삼아왔다. 문제는 해당 첩보의 민감성이다. 군이 확보하고 있는 첩보 내용은 북한 해군의 교신 내용을 감청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군사·외교상 이유로 감청 사실을 공식화하는 일은 금기시되고 있다. 희생자의 형 이씨는 이날 “북한이 보낸 통지문을 보면 동생을 월북자가 아닌 침입자라고 설명하고 있다. 군 당국이 자신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죽은 동생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 아니라면, 멀쩡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이 납득할 수 있도록 실종 경위를 소상히 설명해달라”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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