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100일간의 행적을 기록한 영상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부동산 법안 통과 관련 발언보다 더 ‘발끈’했던 말이 있습니다. 법안 내용이 아닌, 이 단어 하나 때문에 본회의장에서 반말과 고성이 오가기도 했는데요. 최근 수해 복구 현장에서도 주호영 원내대표는 “그런 말 쓰면 우리는 기분 안 좋아한다”며 즉시 정정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8월4일 국회 본회의장>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 미통당은 더 이상 트집 잡지 말고 법 통과에 협조해야 합니다.
통합당 의원들(자리에서 고함): 미통당이라니!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 미통당의 선배들이 저질렀던!
통합당 의원들: 미통당이 뭐야!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
박병석 국회의장: 미래통합당의 약칭은 통합당이니까 당명은 존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8월5일 충주 수해 복구 현장>
이시종 충북도지사: 오늘 주호영 원내대표님을 비롯한 미통당의 국회의원들이 우리 지역에…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 지사님! 미통당이라고 하면 우리 기분 안 좋아한다, ‘통합당’이라 해야지.
이시종 충북도지사: 통합당. 죄송합니다. 우리 통합당의…
바로 ‘미통당’이라는 단어인데요.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이렇게까지 발끈하는 건, 왜 그럴까요? 공식 약칭이 아니어서일까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미래통합당의 공식 약칭은 ‘통합당’이 맞습니다. 하지만 당 이름을 공개할 당시부터 ‘미통당’으로 불릴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기도 합니다. 민주당에서 통합당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을 ‘자한당’으로 줄여 불렀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통합당은 민주당이 일부러 낮춰 부르려는 의도에서 제1야당의 공식 약칭을 쓰지 않는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최형두 당 대변인은 지난 4일 본회의가 끝난 뒤 “우리 정당을 얕잡아보고 일부러 고의적으로 악의적으로 이름에 흠집을 내려는 사람들”이라며 “민주주의에서 예의는 상대방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제발 민주당 의원들 예의를 지켜주기 바란다”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의원들에게 왜 그렇게 ‘미통당’이 싫은지를 개인적으로 물었더니, 첫 번째로 언급하는 건 ‘어감’이었습니다. 한 의원은 “미통은 국민과 소통이 안되는 당 같다. ‘불통당’ 같은 이미지”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의원도 “‘미래’와 ‘통합’, 좋은 두 단어의 조합인데 미통을 합치니 좋은 느낌이 하나도 살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비대위 관계자 역시 “인터넷상에서 ‘미통닭’으로 희화화하더라”고 말하며 어감이 좋지 않다는 이유를 댔습니다. 홍준표 의원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미통이란 법조에서는 ‘미결통산(구속 기소된 피고인이 미결수로 있을 때 복역한 날짜를 본형에 산입해 주는 제도)’의 약자로 미통당은 마치 우리 모두 구속 기소된 피고인이 된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고 당명 개정에 동조하기도 했습니다.
의원들은 또 다른 이유로 “의도가 불순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자유한국당 시절부터 악의적이었다는 겁니다. 당시에 민주당에서는 당 이름에 국가명을 집어넣는 게 말이 안 된다며, “한국당이라고 절대 부르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한 중진 의원은 “자한당의 어감이 ‘잔당’으로도 들린다면서 ‘박근혜 잔당’이라는 비아냥까지 서슴지 않았던 무례한 자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당명은 당이 추구하는 가치와 방향, 유권자들이 끌릴 만한 단어들을 조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당들끼리는 상대 당의 이미지를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국민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약칭으로 기 싸움을 벌이곤 합니다. 이런 종류의 신경전은,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공수가 뒤바뀝니다. 2003년 열린우리당 출범 당시 한나라당은 아무리 공식 약칭이더라도 ‘우리당’이라고 부를 수 없다며, ‘열우당’을 계속 고집했습니다. 2014년엔 새누리당이 새정치민주연합을 ‘새정치연합’으로 부르지 않고 ‘새민련’으로 불러 “새정치 이미지를 퇴색시키려 한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호칭을 바꾸지 않자 새정치연합 역시 새누리당을 ‘새리당’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통합당이 ‘약칭 신경전’을 벌인 것은 정치권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민주노동조합총연맹(약칭 민주노총)은 최근까지도 통합당이 ‘민주’라는 단어를 부르지 않기 위해 ‘민노총’이라고 명명하고 있다며, “통합당이 몰라서 민노총 운운하는 것은 아닐 테고 이 나라 제1노총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부터 혁신의 출발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약칭 공격’을 주고받다 보니, 당명 개정에 들어간 통합당은 아예 약칭을 쓸 수 없는 새 이름을 고민 중이라고 하는데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도 “부르기도 쉽게, 세 글자 정도면 어떻겠냐”고 아이디어를 냈다고 합니다. 비대위 핵심 관계자도 “최대 네 글자 이하면 줄임말을 쓰지 않아도 되고, 부르기도 쉽다”며 “이번엔 약칭 문제도 신경 써서 당명 개정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연달아 두 번째 약칭 공격을 받은 통합당, 이번에는 과연 피해갈 수 있을지 새 당명이 발표되는 오는 31일을 지켜봐야겠습니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