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27일 열린 ‘사랑의 이름’ 전시회의 한 장면. 윤민정(가명)씨는 수십 건에 이르는 스토킹, 데이트폭력 사건 기사를 편지지에 일일이 손으로 썼다.
미래통합당이 지난 3일 스토킹 범죄의 처벌을 강화하고 피해자를 보호·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일명 ‘스토킹 처벌법’을 발의했습니다. 특히 기존 스토킹에 불법 촬영이나 편집·합성 등 디지털 스토킹에 대한 규정을 신설한 점이 더불어민주당 법안과의 차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법안을 대표 발의한 의원은 경북 구미을 지역구 초선인 김영식 의원인데요. 스스로도 “보수 정당에서 이례적으로 발의했다”고 표현합니다. 김 의원은 발의 배경을 묻는 질문에 ‘지역구’ 이야기를 먼저 꺼냈습니다.
“총선 공약으로 언급했던 만큼 지역구인 구미시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가 컸다. 구미는 산업도시이자 평균 나이가 38살로 경북에선 제일 젊은 도시에 속해 1인 가구 여성 비율이 매우 높다. 그동안 보수당에서는 스토킹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지만 이제는 인식이 많이 바뀌었고, ‘보수꼰대’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측면에서 꼭 필요한 법안이다.”(6일 <한겨레> 전화 통화)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 국회 개원을 알리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주호영 원내대표도 당의 총선 공약이었던 만큼 ‘당 중점 법안’으로 채택해 조속히 처리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같은 날 ‘젠더 폭력 살인 근절법 마련을 위한 정책 토론회’를 개최한 김웅 의원도 “당론으로 채택돼 반드시 통과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힘을 보탰습니다. 통합당에서 그동안 외면해온 젠더 의제가 정책으로까지 나온 데는 중도층을 겨냥하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의 기치와 맥이 닿아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통합당 비대위의 한 관계자는 “통합당의 취약지대라고 불리던 여성 관련 이슈에 대한 인식 변화가 이뤄지면서 이제 당내 기조나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스토킹 처벌법은 1999년 처음 발의되면서 논의가 시작됐지만 21년간 통과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습니다. 현행법상으로 스토킹하다 붙잡혀도 ‘경범죄 처벌법’에 따라 10만원 이하의 범칙금만 무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엔(n)번방 사건에서 알려진 7년간의 스토킹 범죄만 봐도 중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디지털 스토킹 수법까지 날이 갈수록 지능화되고 있습니다.
여권은 이미 적극적인 태도입니다. 법무부는 지난달 스토킹 범죄로 최대 징역 5년형을 받을 수 있는 조항 등을 담은 제정안을 법제처에 제출했고, 법제처는 세부 조항 등을 조율한 뒤 이르면 이달 안에 국회에 보낸다는 계획입니다. 민주당에서도 남인순·정춘숙 의원이 법무부 제정안보다 더 강력한 법안을 1호 법안으로 발의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21년 동안 국회에 발의됐던 20여건의 스토킹 처벌법 가운데 단 한건만 발의하는 등 소극적이었던 보수 정당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겁니다. 이번에는 통과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이유입니다. 이제는 4·15 총선을 앞두고 너 나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정당이 내세웠던 ‘스토킹 처벌법 공약’을 지킬 때입니다.
장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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