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한국 사회는 ‘복지 확대’에 대한 공감대가 커졌지만, 증세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은 여전한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는 과연 ‘지속가능한 복지국가’를 위한 사회적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6~11일 만 18살 이상 남녀 1000명에게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팬데믹이 불러온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정부의 경제적 지원 필요성에 대한 질문에 “필요하다”는 응답이 84.7%에 이르렀다. 이 가운데 “매우 필요하다”는 응답도 29.7%나 됐다. 최근 가구당 최대 100만원씩 지급된 전국민 재난지원금도 77.8%가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모든 국민에게 보편적으로 복지 혜택을 주는 보편복지에 대한 지지는 49.5%로 선별복지(45.3%)보다 다소 앞섰다. “기업의 해고방지와 고용유지”를 위한 적극적인 정부 지원(51.3%)이나 기본소득 도입(58.5%) 등에도 과반이 찬성했다. 2011년 8월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정치권의 복지 논쟁이 본격화된 뒤 9년이 흐른 지금,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방향성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는 상당히 탄탄한 셈이다. 국가가 국민의 삶을 책임져주길 바라는 마음이 커진 것에 견주어 세금 인상에 대한 두려움은 매우 컸다. 증세에 반대하는 응답이 59.8%에 이르고 ‘복지 확대’의 전제조건인 ‘재정 확대’에 대한 반대도 55.6%나 됐다. 자신의 이념 성향이 ‘진보’라고 답한 이들 중에서도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해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응답은 45.8%로 증세 반대(49.5%)보다 적었다. 지난 2015년 5월 <한겨레> 조사에서 “사회복지 확대를 위해 세금을 더 낼 의사가 있는가”를 묻는 질문에는 긍정과 부정의 답이 정확히 ‘50% 대 50%’로 갈린 것에 비하면 증세에 대한 반대 여론이 10%포인트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은 “증세 반대 여론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완강하다”며 “사회안전망 강화는 당장 내게 혜택이 오지 않는 ‘어음’으로 생각해, 지금 지갑을 움켜쥐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팽배해 있다”고 풀이했다. 황성현 인천대 교수(경제학)는 “누가 여당이 되든 표 되는 복지 혜택만 홍보하고 표 떨어지는 증세 등 재원 조달 방안은 솔직하게 설명하지 않으니 복지 확대는 필요하지만 증세는 안 된다는 국민들의 모순적 인식도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실제로 정치권의 복지 담론은 기본소득제 논의까지 확대됐지만 이를 뒷받침할 증세 논의는 ‘부자 증세’ ‘핀셋 증세’ 수준에 그쳐왔다. 하지만 보편적 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고소득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세율 조정이나 지출 조정을 넘어 보편 증세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합의된 의견이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가 불어닥쳐 조세 저항이 극에 달한 시기이기도 하지만, 176석을 지닌 ‘슈퍼여당’이 책임 있는 자세로 증세를 논의할 적기이기도 하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여당이 복지국가를 약속할 거라면 정치적 책임을 가지고 증세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며 “재정 신뢰를 높이고 지출 낭비를 줄이는 재정 개혁, 복지 효능감을 높이기 위한 복지 전달체계 개혁 등을 동시에 진행한다면 국민들에게 증세를 설득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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