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전당대회 D-6
‘어차피 당대표 황교안’ 탄탄한 대세론 속
오세훈-김진태의 치열한 표심 잡기 공방
태극기부대·지만원·탈당 문제 등으로 논쟁
2등 권한 없지만 향후 정치 행보에 큰 영향
20일 오후 서울 중구 <채널 에이(A)> 스튜디오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당대표 후보 TV토론회에서 후보들이 토론을 준비하고 있다. 왼쪽부터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진태 의원, 황교안 전 국무총리. 국회 사진기자단
‘어당황(어차피 당대표는 황교안)’이기 때문일까요? 일찌감치 승자가 결정 난 게임처럼 느껴지는 2·27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를 바라보는 여의도의 시선이 그래서인지 ‘1등’보단 ‘2등’에게 쏠리고 있습니다. 유영하 변호사의 인터뷰로 전해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박심’ 논란과 김진태 의원의 열혈 지지층인 ‘태극기 부대’ 위세에도 ‘황교안 대세론’은 흔들림이 없는 듯합니다. 그렇다 보니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김진태 의원의 치열한 표심 잡기 공방이 오히려 주목받고 있습니다. 당초 3위가 될 것으로 예상됐던 김 의원이 2위 자리를 넘보려는 듯 오 전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모습입니다.
자유한국당은 대표와 최고위원을 분리선출하는 단일성 집단 지도체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2등에게는 어떠한 권한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다만, 당의 간판을 뽑는 대형 선거에서 얼마나 많은 세를 보이느냐에 따라 이들 후보의 향후 정치 행보는 커다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 전 시장과 김 의원은 20일 <채널에이(A)>가 중계한 당대표 후보 토론회에서도 태극기 부대에 관한 입장과 중도층 흡수론에 대한 시선이 엇갈리면서 첨예하게 논쟁을 했습니다.
20일 오후 서울 중구 <채널 에이(A)> 스튜디오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당대표 후보 TV토론회에서 오세훈 후보가 토론을 준비 중인 모습. 국회 사진기자단.
오세훈 “태극기 부대는 컨트롤이 안 됩니다. 이번에 당 지지율 떨어진 ‘5·18 망언도 컨트롤이 안 된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진태 의원은 지지율 축소를 지향하는 후봅니다. 당을 지킨 건 맞지만 지키면서 망가뜨렸다. 마이너스 후보라는 이런 지적 뼈저리게 느껴야 합니다.”
김진태 “태극기 부대가 아닙니다. 군대가 아닙니다. 지휘체계가 없고 순수 자발적인 조직이라는 게 핵심입니다. 나오라고 해서 나오는 게 아니라 나라가 걱정돼 나오는 것이죠.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요. 한번 나가서 태극기를 흔들어보면 해소될 겁니다.”
20일 오후 서울 중구 <채널 에이(A)> 스튜디오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당대표 후보 TV토론회에서 김진태 후보가 준비하고 있다. 국회 사진기자단.
김진태 “오 전 시장님이 중도표 흡수론 중도 확장 자꾸 말씀하시니까 진짠줄 알겠습니다. 제가 제대로 짚어보겠는데요. 중도표 흡수론이라는 건 본래 야당이 하는 게 아닙니다. 이건 정치사적으로도 강력한 여당 혹은 더러 야당이 하더라도 다수당일 때 얘기하는 거지, 지금처럼 수세에 몰린 야당이 중도를 확장하는 게 아닙니다.”
오세훈 “지난 대선 때 표를 분석해 보면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가 780만표를 얻었습니다. 문재인 후보에 비해서 500만표가 부족하죠. 그것만 가지고 올 수 있으면 총선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그분들은 절대 민주당 찍는 분들이 아닙니다. 자유한국당에 대해서도 미진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분들이 지향하는 정치지형, 그분들이 바라는 나라의 미래를 중도보수가 제시를 하고 그분들의 마음을 받아오면 됩니다. 실제로 그분들과 가장 브랜드 이미지가 겹치는 것이 저라고 자부합니다.”
두 사람이 부딪힌 지점은 또 있었습니다. 김 의원이 논란 중심에 서 있는 ‘5·18 망언’ 사건입니다. 오 전 시장은 “오늘 지만원씨의 사이트에 들어가서 내용을 봤느냐.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상스러운 욕설과 저주가 있더라”며 “김 의원이 대표가 되면 많은 혼란이 있고, 당 이미지에 타격이 있고 지지율이 더 떨어질 것 같다. 극우적인 시각을 가진 분과는 적당히 선을 그어야 한다. 그럴 생각이 있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김 의원은 “지만원씨에 대해 저보다 훨씬 잘 알고 있다. 저는 사이트 찾아다니면서 볼 시간이 없다. 지만원 박사의 이미지를 동료 후보들에게 덧씌워 정치적 의도로 보려는 것 아닌가 하는 시각이 한눈에 보인다. 착잡하다”고 응수했습니다. 19일 <티브이(TV) 조선>이 중계한 2차 당대표 후보 토론회에서 김 의원은 황 전 총리와 교육·광주형 일자리 등 정책 현안에 대한 질문을 주고받은 반면, 오 전 시장과는 탈당과 복당,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신의 상실 등 민감한 사안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오 전 시장은 이날도 김 의원과 극우 인사 지만원씨와의 관계를 물고 늘어졌습니다.
전당대회까지 일주일이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김 의원 지지층이 일으키는 돌풍은 예상보다 거셉니다. 최근 ‘5·18 망언’ 논란으로 인한 ‘노이즈 마케팅’ 효과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티브이 토론회가 아닌 합동 연설회에 가면 더욱 심상치 않게 느껴집니다. 김 의원 지지자들은 다른 의원들의 연설 시간에도 오로지 “김진태! 당대표!”만을 연호하며 행사를 쥐락펴락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지난 18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대구·경북 합동 연설회에서 축사를 하기 위해 무대에 올랐던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야유 속에 “조용히 해달라”며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김 의원 지지자들이 ‘5·18 망언’ 논란으로 당 윤리위원회에 회부됐다가, 당대표 출마 자격으로 징계 유예 처분을 받자 그를 윤리위에 회부한 김 비대위원장에게 비난을 쏟아냈기 때문입니다. 소동 속에 김 위원장은 1분여 발언을 중단했고, 사회자까지 나서 관객을 진정시킨 뒤에야 재개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부터 당대표 출마를 준비해 온 김 후보는 지난해 10월 안팎으로 ‘태극기부대’ 입당을 적극 추진했다고 합니다. 자유한국당은 이즈음 8천여명이 새로 입당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김 후보 지지자로 추정되는 이들은 전체 선거인단(37만8천명)의 2%에 불과해 숫적으로는 판을 ‘뒤흔들’ 규모는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연설회장을 휩쓸면서 ‘대세’인 듯 착시효과를 일으킨다는 데 있습니다. 한 의원은 “현장에 가보면 이들 목소리 밖에 들리지 않으니 이 사람들이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마음을 정하지 못한 지지자들이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습니다. 또 이런 분위기에 실망한 일반 당원들이 투표장에 나오지 않고, 대신 극렬 ‘김진태 지지자’들이 집중 투표를 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김진태 2위설’을 뒷받침하는 배경입니다.
18일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서 김진태 후보의 지지자들이 김 후보가 연설하는 동안 “당대표 김진태”를 연호하고 있다. 정유경 기자
오 전 시장은 예상보다 주목도가 떨어지는 모습입니다. 여기엔 그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정치권의 목소리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것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오 전 시장의 신망이 약해서일 수도 있지만, 나중에 황 전 총리가 대표가 될 경우 공천에 지장이 생길 수 있어 다들 침묵 속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지난 19일 한국당 소속 전·현직 광역·기초의원 235명이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오 전 시장을 지지하는 선언식을 열긴 했습니다만 이들 다수는 수도권 출신 전직 광역·기초의원이었습니다. 사실상 당권을 바라보며 지난해 11월 전격 입당한 오 전 시장이 당대표 후보 등록일을 앞두고 ‘보이콧’ 대열에 합류한 뒤, 다시 번복하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선거 동력을 떨어뜨리게 한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일각에선 숨겨진 ‘샤이 개혁보수층’이 전대에서 표심을 발휘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옵니다. 이렇게 되면 ‘2위 자리’는 오 전 시장에게 가까워질 가능성이 큽니다. 대구·경북(TK)에 지역구를 둔 한 의원은 “이 동네 민심을 보면 황 전 총리가 출마하지 않았더라면 김 의원을 지지했을 것”이라며 “반대로 말하면 김 의원 쪽으로 갈 수 있던 표가 황 전 총리한테 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김 의원 지지층의 충성도가 높고, 그들이 투표하러 나올 확률도 높긴 하지만 그렇게 많은 숫자가 아니다” “오 전 시장이 2위를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습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7일 서울 영등포구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오는 27일 예정된 당 대표 선거 출마 선언을 한 뒤 회견장을 나서며 지지자들의 연호를 받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