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교섭단체 대표연설
‘마이클 잭슨’, ‘호랑이’ 화면 등장에 웃음
정세균 “정치인 언어의 품격이…참담”
문희상 의장에 “블루하우스 스피커”라 하자
여당 의원들 “아무말 대잔치냐” 고성
‘마이클 잭슨’, ‘호랑이’ 화면 등장에 웃음
정세균 “정치인 언어의 품격이…참담”
문희상 의장에 “블루하우스 스피커”라 하자
여당 의원들 “아무말 대잔치냐” 고성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대한 국회 본회의장 장내 반응은 웃음으로 시작해 고성과 항의로 끝났다.
김 원내대표는 5일 연설을 시작하자마자 양 옆의 대형 스크린에 ‘문워킹’ 영상을 틀었다. 마이클 잭슨이 춤을 추는 영상을 옆에 두고 김 원내대표는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이 가져온 혼란으로 마이클 잭슨의 문워킹처럼 한국 경제가 미끄러지듯 뒷걸음질 치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본회의장 여기저기에선 웃음 소리가 삐져나왔고, 일부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잘 한다!”라고 추임새를 넣었다. 소득주도성장을 비판하던 김 원내대표가 “소득주도성장은 이 정권이 국민을 현혹하는 ‘보이스피싱’이다”라고 말하자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웃음을 참기 어려운지 “하하하” 소리내 웃기 시작했다. 한국당 의원들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뒤이어 본회의장 화면에는 서커스 장면 속 호랑이의 그림이 띄워졌다. 김 원내대표는 “로마 시민들은 성실히 땀흘려 일한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살기보다는 국가가 뿌린 세금으로 방탕하게 살게 됐다”며 “그런 시민들을 위해 정치인들은 콜로세움에서 서커스까지 제공했다”고 연설을 이어갔다. 여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웃음이 지속됐다. 이즈음 정세균 전 국회의장은 트위터에 “김성태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듣고 있다. 정치인의 언어의 품격은 절대 불가능한 것인가? 참담하다”라고 글을 올렸다.
김 원내대표는 “‘탈원전 대못’을 뽑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최근 집중 호우로 전국의 태양광 발전 시설들이 수해에 그대로 노출됐다”고 말했다. 이에 민주당 의원들 자리에선 “그건 박근혜 정부 때부터 시작한 겁니다”라는 외침이 나왔다. 탈원전 정책 비판 대목에서 오랜만에 자유한국당 의원들 사이에서 “잘 한다!”가 나왔다. 김 원내대표가 “원전은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산업이다”라고 말하자 한 민주당 의원은 “(김 원내대표 지역구인) 강서구의 미래 먹거리냐”고 소리쳤다.
“‘북한산 석탄’ 국정조사를 하자”고 촉구할 때 김 원내대표는 사전에 준비한 원고와 달리 즉석에서 “홍영표 원내대표님은 이를 즉각 수용하십시오!”라고 외쳤다. 내내 자리를 지키던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마침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였다.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선 또 다시 웃음이 나왔다.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이었다. 연설을 시작한 지 40여분이 지나며 원고의 마지막 페이지인 29쪽에 도달했다. 김 원내대표는 규제 완화를 촉구하며 “당 대표와 원내대표가 참여하는 ‘붉은 깃발 뽑기 비상경제협치회의’를 제안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웃었고, 한 의원은 “그걸 말이라고 하냐”고 받아쳤다. 이에 김 원내대표는 “이해가 안 된다니 다시 읽겠다. 붉은 깃발 뽑기 비상경제협치회의를 제안한다”고 거듭 말했다. 원고는 이 대목에서 끝이었다.
그런데 김 원내대표는 사전에 배포한 원고에 없던 발언을 추가했다. 바로 뒤에 앉아있는 문희상 국회 의장을 향한 것이었다.
“끝으로 엊그제 문희상 국회의장이 2018년 정기 국회 개원 연설을 했습니다. 어떻게 입법부 수장이 블루하우스(청와대)의 스피커를 자처합니까.”
웃음과 함께 관망하던 민주당 의원들은 이에 일제히 정색하며 들고 일어났다. “지금 뭐하는 짓이야!”, “말이야 막걸리야?”, “적당히 좀 해요!”, “아무말 대잔치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원내대표란 양반이 의장을 모욕하냐!”고 소리쳤다. 문 의장은 뒤에 앉아 미소를 지었다.
민주당 의원 다수의 고성이 김 원내대표의 마이크 소리와 겹치며 장내는 혼란에 빠졌다. 김 원내대표는 아랑곳하지 않고 발언을 이어갔다.
“어떻게 심판이 선수로 뛰려고 할 수 있습니까? 한 나라의 입법부 수장으로서 품격도 상실하고 균형 감각도 상실한 대단히 부적절한 코드 개원사였습니다. 아무리 여당 출신 국회 의장이라고 하더라도 국회 본연의 책무인 행정부 감시는 소홀히 하고…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는 국회 의장으로서 책무를 한시도 잊지 말길 바랍니다.”
김 원내대표의 연설이 이렇게 마무리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박수를 치며 통로로 나와 도열했다. “잘 했어요!”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김 원내대표와 하나 둘 악수를 하며 격려했다. 민주당 의원들 중엔 박수치는 사람이 없었다. 바른미래당과 정의당 등 다른 야당도 마찬가지였다. 김 원내대표가 단상에서 내려가자 문 의장이 입을 열었다.
“김성태 원내대표님 수고하셨습니다. 따끔한 충고 잘 들었습니다. 내 정치 인생 통틀어서, 국회가 국회다워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의회주의자입니다. 제 의장 임기동안 청와대나 정부의 말에 휘둘리는 그런 일이 있으면 제 정치 인생을 몽땅 다 걸겠습니다.”
“잘 하셨어요!” 본회의장 밖으로 나가던 민주당 의원들이 멈춰서 문 의장을 향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런 일은 없어요. 국회의장을 모욕하면 국회의장이 모욕당하는게 아니라 국회가 모욕당하는 사실을 명심해주길 바랍니다.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칩니다. 산회를 선포합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5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정세균 전 국회의장 트위터 갈무리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5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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