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왜 패배했나
이명박·박근혜 적폐 사죄도 않고
문재인 정부 ‘발목잡기’에만 골몰
남북평화 향한 ‘혁명적 변혁’을
색깔론 매도하며 지지층 돌아서
보수정체성 시대흐름 맞는지 살펴야
혁신적 변화 없으면 긴 침체 불가피
이명박·박근혜 적폐 사죄도 않고
문재인 정부 ‘발목잡기’에만 골몰
남북평화 향한 ‘혁명적 변혁’을
색깔론 매도하며 지지층 돌아서
보수정체성 시대흐름 맞는지 살펴야
혁신적 변화 없으면 긴 침체 불가피
6·13 지방선거 결과를 가로지르는 열쇳말은 ‘보수 궤멸’이다. 대한민국 보수 정당의 적통을 잇는다는 자유한국당은 전국 광역단체장 17곳 가운데 대구·경북 2곳에서만 간신히 당선자를 낸 ‘티케이 정당’으로 쪼그라들었다. 박정희 신화와 냉전·반공주의, 지역주의에 기대어 연명해온 한국 보수세력에 대해 국민들이 퇴장 명령을 내린 셈이다.
■ ‘지리멸렬 보수’에 퇴출 명령 영남을 기반으로 한 자유한국당은 1995년 1기 민선 지방선거 도입 이후 한번도 빼앗기지 않았던 부산·울산·경남의 지방권력을 통째로 더불어민주당에 내줬다. ‘보수의 아성’으로 불리던 서울 강남 3구 가운데 서초구를 제외한 강남·송파구 역시 민주당에 빼앗겼다. 핵심 지지기반인 대구·경북에서도 민주당 후보들이 바짝 따라잡았고, 특히 자유한국당의 ‘정신적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 경북 구미에서도 민주당 후보가 승리했다. 자유한국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문재인 정부의 안보·경제 정책을 ‘좌파 정책’으로 규정하며 국민들에게 심판을 호소했지만, 막상 국민들은 자유한국당 심판을 택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우선 자유한국당이 남북,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진 한반도 평화 분위기에 역행한 점을 민심 이반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다. 홍준표 대표는 연일 “위장평화쇼”라고 폄하하는 데만 열을 올렸다. 반공·극우 이데올로기에 기대어, 한반도 평화를 향한 ‘혁명적 변혁’과 이를 열망하는 민심의 흐름을 정면으로 거슬렀다는 비판이 나온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국민에게 전형적인 수구냉전세력으로 각인을 시켰다”며 “냉전반공주의 세력이 스스로 퇴장을 거부했기 때문에 민심이 정치적 퇴출을 명령한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정당에 대한 심판 기류는 이미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도 감지된 바 있다. 2016년 20대 총선 공천 당시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은 ‘박근혜 청와대’가 전횡을 휘둘렀고, 180석을 넘길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122석만을 얻어 민주당에 원내 1당 지위를 내주는 수모를 겪었다.
이어 자유한국당은 자신들이 배출한 전직 대통령 2명이 구속됐지만, 사과하거나 책임지는 이는 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이후에도 쇄신과 혁신은커녕, ‘보수 결집’을 도모한다며 박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지난해 대선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문재인 민주당 후보에게 역대 최대 표차인 557만표 차이로 패배했다. 하지만 연속된 패배에도 반성은 없었다. 오히려 택한 것은 ‘나라를 통째로 넘기겠습니까’ 등의 구호로 대표되는 안보 공세였다. 특히 홍준표 대표는 ‘대통령 개헌안’에 대해 “사회주의 헌법 개정쇼”라고 색깔론을 덧칠했고, 부산 유세에서는 계속되는 경적에 “서울 강북에 가면 저런 차가 많다”며 지역을 갈랐다. 하락하는 지지율에 대해선 여론조사가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정한울 한국리서치 여론분석전문위원은 “보수 정당은 2004년 총선 패배 뒤 천막당사 등 반성과 혁신을 하는 모습을 거친 뒤에야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졌는데도 아무런 반성이 없었다”며 “남아 있는 보수층을 결집시키기보다 떠나간 지지층을 되돌아오도록 참신하고 세련된 보수의 모습으로 변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 “혁신 없으면 긴 침체기 불가피” 홍준표 대표의 독단적 리더십은 사태를 결정적으로 악화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홍 대표가 위기에 빠진 자유한국당을 바로 세우기는커녕, ‘당권 재창출→2020년 총선 공천권 행사→대선 출마’ 등 자신의 정치적 입지 다지기를 위해 당을 ‘사당화’했다는 것이다. 홍 대표의 ‘막말’과 당내 다툼, ‘내 사람 심기’ 논란 등 자유한국당에서 터져나온 분란은 지지자들이 자유한국당에 등을 돌리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유한국당 안팎에선 “보수세력을 원점에서 다시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4일 김용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한겨레>와 만나 “(자유한국당이) 시대적 흐름과 국민적 바람을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며 “기존 생각과 논리에 매몰돼 시대와 국민을 자신들의 잣대로 재단하려고 했다”고 반성했다. 이어 “보수 정당의 정체성, 신념체계가 시대적 흐름과 국민적 바람과 부합하는지 근본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며 “선거 패배 양상이 너무 심각해 단순히 리더십 교체 문제가 아니라 당에서 깊은 논의와 성찰이 있어야 문제가 풀려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치권 안팎에선 한국 보수정당이 ‘혁명적 수준’의 혁신을 보이지 않는 이상, 긴 침체기에 들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대안이 될 리더십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은 “지방선거에 임할 때나 선거 패배 이후에도 반성이나 사과가 없어 앞으로 더욱 침체기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윤평중 교수는 “정치공학적인 이합집산이 아니라 근본적인 변화를 한다는 것을 국민에게 느끼게 해주지 않으면 2년 뒤 총선에서도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가 재연될 수 있다”고 짚었다. 이정훈 송경화 기자 ljh9242@hani.co.kr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14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사퇴 의사를 밝히고 회의장을 떠나고 있다. 왼쪽은 김성태 원내표.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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