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쓰는 헌법 2018 ① 전문·총강
1987년 9차 개헌 이후 31년 만에 개헌 논의가 정치권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번 개헌은 시대 흐름에 맞춰 기본권을 강화하는 ‘권리장전의 현대화’와 권력분립 등을 담아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대통령선거 당시 모든 당이 공약한 ‘6·13 지방선거-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를 자유한국당만 반대하면서 개헌 논의가 지체되고 있다. 특히 국민의 삶과 권리에 상당한 영향을 줄 개헌 논의 내용이 국민들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 언어에 여전히 갇혀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여당은 이미 2월 초에 당론으로 개헌안을 내놓았다. ‘지방선거-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를 위해 늦어도 3월 중순까지 여야 개헌안을 합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에 앞서 정의당도 개헌안 당론을 발표했다. 자유한국당은 3월 중순까지 당 자체 개헌안을 만들겠다며 속도를 늦추고 있다.
국회 논의가 더디자,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가 합의에 실패하면 정부가 개헌안을 내겠다며 지난 13일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헌법자문특위는 내부 회의, 국민 대상 여론조사(2월 말~3월 초) 등을 거쳐 3월 중순께 개헌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할 계획이다. 시민사회에서는 시민 의견을 개헌에 적극 반영하기 위해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주노총, 4·16연대,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16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국민주도헌법개정전국네트워크’(국민개헌넷)를 구성했다. 현재 개헌 논의의 핵심은 ‘권리 보장’과 ‘권력 분립’이다. 특히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삼권분립의 한 축인 의회와 어떻게 나눌 것인지 등 권력구조 개편이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한겨레>는 지체된 개헌 논의가 속도를 낼 것을 기대하는 동시에, 시민들이 개헌 논의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개헌의 주요 쟁점을 정리한 ‘새로 쓰는 헌법 2018’ 기획을 마련했다. 기본권·전문·총강 편을 첫 회로 시작해, 지방분권·직접민주주의, 권력구조(정부 형태), 선거제도 개혁, 경제·사법부 등을 짚을 예정이다.
헌법의 서문 구실을 하는 ‘전문’에는 헌법의 정통성과 역사성, 제정 과정과 지향하는 가치 등이 담긴다. ‘헌법의 기본정신’인 셈이다. 헌법 전문은 헌법 해석 기준의 효력도 지닌다. 지난 2011년 헌법재판소가 친일재산환수법을 합헌으로 판단할 때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을 규정한 헌법 전문에 근거해 친일 과거사 청산은 헌법적으로 부여된 임무다. 친일재산 소급박탈이라는 이례적인 경우는 헌법 이념에서 용인될 수 있다”며 헌법 전문을 주요 근거로 삼았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 기본권·총강분과 자문위원이었던 고문현 한국헌법학회 회장(숭실대 법대 교수)은 18일 “우리나라는 프랑스, 독일과 마찬가지로 전문의 규범적 효력을 인정한다”며 “헌법 전문에 위반되는 법률이 있으면 헌재에서 위헌 판정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고 회장은 “이같은 전문의 규범력 때문에 전문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고, 전문이 (1987년 이후) 지난 31년간 변화해온 시대를 온전히 반영해야 현실을 제대로 규율하는 살아있는 헌법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치권도 ‘역사적 사실’과 ‘시대적 가치’가 압축적으로 담긴 개헌안 ‘전문’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1일 현행 헌법 전문에 있는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역사적 사실에 이어 ‘부마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촛불시민혁명’을 명시하기로 했다. 이는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강훈식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이 네 가지 역사적 사실은 한국 민주주의를 만든 중요한 이정표이고, 대한민국이 민주주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명확히 하기 위해 전문에 담으려는 것”이라며 “야당의 개헌 입장이 정해지면 추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당도 지난달 28일 ‘5.18민주화운동, 6.10항쟁, 촛불시민혁명’을 명시하는 ‘전문’이 담긴 개헌 시안을 내놨다. ‘10차 개정 헌법’에 이르는 길목에 이같은 역사적 징검다리들이 핵심 디딤돌 역할을 했음을 명확히 밝힌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정태옥 대변인은 지난 1일 논평을 통해 “촛불정신은 가치나 의미가 확정되지 않은 개념인데 이를 헌법 전문에 넣는 것은 특정 세력 위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가겠다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정의당은 헌법 전문에 이같은 역사적 사실에 더해 ‘노동존중, 평등사회, 복지국가’ 등의 ‘시대적 가치’도 담았다. 민주 “5·18, 6·10 항쟁, 촛불정신 넣자”
문 대통령 공약에 정의당도 시안 명시
한국당 “촛불은 의미확정 안돼” 반발 총강의 ‘자유’ 표현 삭제도 논란 반복
한국당 “북한과 대치상황 경시 안돼”
‘수도’ 조항 신설 명문화도 가시권 헌법의 기본질서, 국가가 나아갈 방향과 원칙 등을 담은 ‘총강’(헌법1조~9조)에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수도’ 조항 신설이 쟁점이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은 현행 헌법 전문과 통일 관련 조항인 제4조, 두 군데에 있는데 ‘자유’라는 단어를 뺄지 여부에 대한 해묵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에서도 이런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데, ‘자유’가 포함됐다 빠졌다를 반복하고 있다. 헌법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이 처음 들어간 것은 1972년 유신헌법이었다. 이때는 ‘전문’에만 이 표현이 있었지만, 이후 현행 헌법이 수립된 9차 개헌(1987년)때 4조에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라는 표현이 추가됐다. 민주당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용어를 유지하기로 한 반면, 정의당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보다 넓은 의미인 ‘민주적 기본질서’가 적합”하다며 ‘자유’를 빼는 것으로 당론으로 정했다. 반면, 유지를 주장하는 쪽은 북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민주주의’ 칭호를 쓰고 있어 ‘자유’를 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국회 헌법개정·정치개혁특위(헌정특위) 자유한국당 위원인 안상수 의원은 지난달 24일 헌정특위 회의에서 “‘민주적’이라는 표현이 더 포괄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북한과 대치돼 있는 분단국가의 현실을 경시하는 것”이라며 “특히 통일의 원칙에 있어 ‘자유민주주의’는 그야말로 꼭 반영이 돼야 하는 것으로 변경돼서는 안 되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수도’ 조항 신설 필요성은 지난 2004년 헌법재판소가 ‘관습헌법’상 대한민국 수도는 서울이라고 결정한 이후 본격화했다. 국회 개헌특위에서도 이번 개헌을 통해 ‘세종시를 수도로 한다’거나 ‘수도를 법률로 정한다’ 등 ‘성문헌법’으로 수도를 명확히 규정해야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헌법의 영토 조항인 3조와 통일 조항인 4조 사이에 ‘행정수도’ 조항을 신설하기로 했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헌법의 서문 구실을 하는 ‘전문’에는 헌법의 정통성과 역사성, 제정 과정과 지향하는 가치 등이 담긴다. ‘헌법의 기본정신’인 셈이다. 헌법 전문은 헌법 해석 기준의 효력도 지닌다. 지난 2011년 헌법재판소가 친일재산환수법을 합헌으로 판단할 때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을 규정한 헌법 전문에 근거해 친일 과거사 청산은 헌법적으로 부여된 임무다. 친일재산 소급박탈이라는 이례적인 경우는 헌법 이념에서 용인될 수 있다”며 헌법 전문을 주요 근거로 삼았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 기본권·총강분과 자문위원이었던 고문현 한국헌법학회 회장(숭실대 법대 교수)은 18일 “우리나라는 프랑스, 독일과 마찬가지로 전문의 규범적 효력을 인정한다”며 “헌법 전문에 위반되는 법률이 있으면 헌재에서 위헌 판정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고 회장은 “이같은 전문의 규범력 때문에 전문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고, 전문이 (1987년 이후) 지난 31년간 변화해온 시대를 온전히 반영해야 현실을 제대로 규율하는 살아있는 헌법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치권도 ‘역사적 사실’과 ‘시대적 가치’가 압축적으로 담긴 개헌안 ‘전문’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1일 현행 헌법 전문에 있는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역사적 사실에 이어 ‘부마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촛불시민혁명’을 명시하기로 했다. 이는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강훈식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이 네 가지 역사적 사실은 한국 민주주의를 만든 중요한 이정표이고, 대한민국이 민주주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명확히 하기 위해 전문에 담으려는 것”이라며 “야당의 개헌 입장이 정해지면 추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당도 지난달 28일 ‘5.18민주화운동, 6.10항쟁, 촛불시민혁명’을 명시하는 ‘전문’이 담긴 개헌 시안을 내놨다. ‘10차 개정 헌법’에 이르는 길목에 이같은 역사적 징검다리들이 핵심 디딤돌 역할을 했음을 명확히 밝힌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정태옥 대변인은 지난 1일 논평을 통해 “촛불정신은 가치나 의미가 확정되지 않은 개념인데 이를 헌법 전문에 넣는 것은 특정 세력 위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가겠다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정의당은 헌법 전문에 이같은 역사적 사실에 더해 ‘노동존중, 평등사회, 복지국가’ 등의 ‘시대적 가치’도 담았다. 민주 “5·18, 6·10 항쟁, 촛불정신 넣자”
문 대통령 공약에 정의당도 시안 명시
한국당 “촛불은 의미확정 안돼” 반발 총강의 ‘자유’ 표현 삭제도 논란 반복
한국당 “북한과 대치상황 경시 안돼”
‘수도’ 조항 신설 명문화도 가시권 헌법의 기본질서, 국가가 나아갈 방향과 원칙 등을 담은 ‘총강’(헌법1조~9조)에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수도’ 조항 신설이 쟁점이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은 현행 헌법 전문과 통일 관련 조항인 제4조, 두 군데에 있는데 ‘자유’라는 단어를 뺄지 여부에 대한 해묵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에서도 이런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데, ‘자유’가 포함됐다 빠졌다를 반복하고 있다. 헌법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이 처음 들어간 것은 1972년 유신헌법이었다. 이때는 ‘전문’에만 이 표현이 있었지만, 이후 현행 헌법이 수립된 9차 개헌(1987년)때 4조에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라는 표현이 추가됐다. 민주당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용어를 유지하기로 한 반면, 정의당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보다 넓은 의미인 ‘민주적 기본질서’가 적합”하다며 ‘자유’를 빼는 것으로 당론으로 정했다. 반면, 유지를 주장하는 쪽은 북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민주주의’ 칭호를 쓰고 있어 ‘자유’를 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국회 헌법개정·정치개혁특위(헌정특위) 자유한국당 위원인 안상수 의원은 지난달 24일 헌정특위 회의에서 “‘민주적’이라는 표현이 더 포괄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북한과 대치돼 있는 분단국가의 현실을 경시하는 것”이라며 “특히 통일의 원칙에 있어 ‘자유민주주의’는 그야말로 꼭 반영이 돼야 하는 것으로 변경돼서는 안 되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수도’ 조항 신설 필요성은 지난 2004년 헌법재판소가 ‘관습헌법’상 대한민국 수도는 서울이라고 결정한 이후 본격화했다. 국회 개헌특위에서도 이번 개헌을 통해 ‘세종시를 수도로 한다’거나 ‘수도를 법률로 정한다’ 등 ‘성문헌법’으로 수도를 명확히 규정해야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헌법의 영토 조항인 3조와 통일 조항인 4조 사이에 ‘행정수도’ 조항을 신설하기로 했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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