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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국민’ 넘어 ‘사람’ 세우기…위험사회 ‘안전도 기본권’ 공감

등록 2018-02-18 21:10수정 2018-03-06 10:34

새로 쓰는 헌법 2018
①기본권
※클릭하면 커집니다
1987년 9차 개헌 이후 30여년 만에 개헌 논의가 본격화됐다. 기본권 분야에서의 개헌 과제는 ‘권리장전의 현대화’로 요약해볼 수 있다. 이른바 ‘87년 체제’라는 그릇이 한 세대 동안 변화해온 가치나 인식, 사회상을 오롯이 담아내지 못할 정도로 낡았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권리장전 현대화’를 위해 기본권을 강화·확대·신설하고 낡은 조항은 폐지하는 개헌안을 내놓고 있다. 큰 방향은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는 ‘자유권’ 강화와 인간다운 삶을 위해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는 ‘사회권’의 신설 또는 확대다.

■ ‘국민’이 ‘사람’으로…넓어지고 강화되는 기본권

10차 개헌안에서는 현행 헌법에 ‘국민’으로 되어 있는 일부 규정이 ‘사람’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현행 헌법대로라면 ‘국내 거주 외국인 200만 시대’에 외국인이나 무국적자들은 기본권 적용 대상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은 지난 2일 “사회권이 강조되는 때는 ‘국민’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자유권과 관련해서는 ‘사람’이라는 표현으로 변경한다”는 방향을 당론으로 확정했다. 정의당도 지난달 28일 비슷한 취지의 개헌안을 확정했고, 참여연대·민주노총 등 16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국민주도헌법개정 전국네트워크’(국민개헌넷)도 같은 주장을 내놨다. 이렇게 되면 한국에 국적을 둔 ‘국민’은 물론 외국인·무국적자도 동등하게 천부인권과 평등권의 주체가 되고, 행복추구권·양심의 자유, 사생활과 통신의 비밀 등을 보장받게 된다. 다만, 참정권과 교육권·노동권 등 ‘국민’이라는 울타리가 필요한 부문은 제외될 전망이다. 독일, 아일랜드, 네덜란드 등도 헌법에서 ‘사람’이면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권리와 해당 나라 ‘국적자’만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구분해 규정하고 있다.

노동권 강화도 추진된다. 차별과 불공정 해소를 위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헌법에 명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이런 개헌안을 당론으로 확정했고, 국민개헌넷도 같은 의견이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유보적이다. 유엔 사회권 규약과 국제노동기구(ILO)의 권고 내용인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헌법 명시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목됐던 비정규직과 여성에 대한 임금차별을 막는 강력한 제동장치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공무원 노동3권 보장’도 주요 개헌 이슈다. 현행 헌법은 공무원의 노동3권에 대해 ‘법률이 정하는 자에 한하여’ 보장한다고 규정돼 있지만, 공무원의 ‘단체행동권’은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의 ‘집단행위 금지’ 조항에 의해 제한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물리력을 보유한 경찰과 군인의 단체행동권을 법률로 제한할 수 있도록 했지만 그외 공무원의 노동3권은 보장하기로 했다. 이런 개헌안이 현실화하면 그동안 막혀 있었던 공무원의 ‘단체행동권’이 가능해져 하위직 공무원의 근로조건 개선, 고위직 공무원에 대한 견제 등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이와 함께 헌법의 ‘근로’라는 용어를 ‘노동’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근로’는 일제강점기부터 사용돼 국가 동원체제 시대를 반영하는 어감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정의당은 좀더 진보적인 개헌 의제를 내놨다. 제헌헌법에 규정됐던 ‘이익균점권’, 즉 노동자가 임금 외에 기업의 이윤을 부분적으로 공유할 권리가 있다는 조항을 복원해야 한다는 것인데, 국민개헌넷도 뜻을 함께했다. 또 정의당은 ‘노동자의 생존권’ 차원에서 ‘노동자는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을 개헌안에 포함했다.

환경권·건강권·주거권 강화도 주요한 사회권 확대 의제다. 현행 헌법은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하지만 미세먼지,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혹한 등의 피해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현행 헌법은 선언적 의미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가에 환경을 지속가능하게 보전할 의무를 부과하는 방향으로 ‘환경권’이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독일은 헌법 격인 기본법에서 ‘국가는 미래 세대를 위한 책임으로서…행정과 사법을 통해 자연적 생활기반과 동물을 보호한다’고 정하고 있다.

‘건강권’은 사람 또는 국민이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보건뿐 아니라 빈부, 주거, 위생, 노동환경 등 경제·사회적 요소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 요소가 건강에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주거권’ 역시 국가의 시혜적 정책을 통해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권리로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은 특히 주거권과 관련해 “‘투기 억제를 위한 국가의 의무’를 명시해 불평등을 방지하도록 했고, 안정적인 주거 생활도 헌법에 명시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 생명권, 안전권, 성평등…기본권에 신설될까

304명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 등 대형 참사와 재난, 생명을 앗아가는 각종 폭력 등 위험사회를 체험하면서 ‘생명권’과 ‘안전권’을 독자적 기본권으로 명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민주당과 정의당, 국민개헌넷은 모두 ‘모든 사람은 생명권을 가진다’와 같은 생명권 신설에 찬성한다. 정의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형제 폐지 조항’도 개헌안에 담았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생명권 신설이 사형제 폐지 등과 연결될 수 있다며 유보적인 입장이다. 생명권은 주요 국가에서 ‘누구든지 생명권과 신체적 훼손을 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독일), ‘모든 인간은 생명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스위스) 등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안전권은 ‘국가가 재해와 모든 형태의 폭력에 의한 피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식으로 국가에 안전 의무를 지우는 것이다. 안전권 신설에는 민주당, 정의당, 국민개헌넷은 물론 자유한국당도 찬성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헌법 11조는 ‘성별에 의해 차별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 규정만으로는 부족해 구체적으로 ‘성평등’ 조항을 신설해 성차별을 실질적으로 해소해야 한다는 요구도 높다. 성평등 실현을 국가의 책무로 규정하고 공직 진출이나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남녀가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남녀평등 조항’을 신설하는 당론을 모았고, 정의당은 좀더 구체적으로 고용·노동·복지·재정 등에서 국가가 실질적인 성평등을 보장하는 규정을 신설하는 개헌안을 내놨다. 국민개헌넷도 뜻을 같이한다. 독일 기본법은 ‘국가는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권리가 실제적으로 실현되도록 지원하고 현존하는 불이익이 제거되도록 노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넓어지고 강화되는 기본권
기본권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한국에 국적을 둔 국민은 물론
외국인·무국적자도 인권·평등권 보장
‘근로 아닌 노동’…노동권 강화 추진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명시 기대
환경·건강·주거권 등 국가책무 강화

신설 대기중인 기본권
세월호 계기 ‘생명권 신설’ 설득력
한국당은 “사형제와 연계” 유보적
‘성평등’구체적 조항 신설 요구 높아
양심적 병역거부·대체복무제 과제
정의당 “저항권·식량주권도 명시해야”

삭제·폐지 대상 조항
‘괴물 검찰’ 만든 검사영장 청구권
검찰개혁·검경 수사권 조정 맞물려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 논란은 우리 사회의 해묵은 과제다. 대부분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여전히 법원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고 감옥으로 가고 있다. 하지만 ‘양심의 자유’를 들어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는 경우도 2004년 이후 70차례에 이른다. 정의당은 “각종 인권 관련 기관들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이 헌법에 보장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한 만큼,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위한 헌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양심적 병역거부권 신설 당론을 확정했다. 국민개헌넷도 같은 의견이다. 대만, 덴마크, 러시아 등이 대체복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망명권’, ‘아동·노인·장애인의 권리’, ‘정보기본권’ 등의 신설도 주요 기본권 의제다. 정치적으로 박해받는 이들을 위한 ‘망명권’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들과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가들이 국외로 망명해 운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국제사회에 보답하는 의미도 있다. 망명권은 프랑스·스위스 헌법과 독일 기본법, 유럽연합 기본권 헌장 등에서도 규정하고 있다. 최근 아동학대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불거지면서 아동을 권리의 주체로 보고,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근거해 아동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 국가의 보살핌을 받을 권리,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지닌 주권자임을 명시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졌다.

또 우리 사회가 지난해 65살 이상 노인 인구가 14%를 넘어선 고령사회로 진입한 만큼 노인 권리보호 규정이 별도로 필요하다는 논의도 나온다. 아울러 장애인 정책이 보호와 시혜의 관점이 아니라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 따라 차별 금지, 적극적 평등 실현, 완전한 사회참여와 통합이라는 국제 수준에 맞게 관련 조항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헌법상 권리인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기본권을 온전히 행사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정보기본권’이 신설돼야 한다는 논의도 지속되고 있다. 알 권리와 정보접근권,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정보문화향유권을 보장하는 것이 그 주요 내용이다. 스위스·핀란드 헌법과 독일 기본법, 유럽연합 기본권 헌장에서도 이를 보장하고 있다. 민주당과 정의당에서는 이런 기본권들을 신설하기로 했고, 국민개헌넷도 같은 취지의 주장을 하고 있다.

정의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저항권’ 신설과 ‘식량주권·지속가능한 농업’도 강조했다. 현행 헌법에서는 ‘저항권’이 명시돼 있지 않고 전문에서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내용으로 간접적으로 규정돼 있다. 이에 정의당은 “헌법재판소는 1994년 ‘국가긴급권의 과잉행사 때는 저항권을 인정하는 등 필요한 제동장치도 함께 마련해두는 것이 현대의 민주적인 헌법국가의 일반적인 태도’라고 판시함으로써 국가긴급권의 과잉행사에 대한 저항권 인정 필요성을 언급한 사례가 있다”며 “헌정질서를 문란하게 만드는 상황에 대해 국민의 저항권을 실정법화할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독일 기본법도 ‘(모든 독일인은) 다른 구제수단이 불가능할 때는 저항할 권리를 가진다’며 저항권을 보장하고 있다. 정의당은 또 ‘식량주권 보장, 먹거리 기본권과 지속가능한 농업권’ 신설도 개헌안에 담았다. 정의당은 “농업의 다원적·공익적 기능, 식량주권과 지속가능한 농업 보장을 위한 국가의 지원, 농가의 적정한 소득과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 안전하고 안정적인 식생활을 보장받을 권리인 ‘먹거리 기본권’ 등을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검사 독점 영장청구권, 역사 속 사라질까

사법절차에 대한 권리와 관련, 헌법 12조와 16조에 법관의 영장발부에 대해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를 삭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962년 5차 개정 헌법에 처음 명시된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은 검찰을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으로 만든 핵심조항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과 검·경 수사권 조정과 맞물려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검사의 영장청구권을 삭제하는 데 당론을 모았고 국민개헌넷도 의견을 같이했다.

‘군인, 경찰 등에 대한 이중배상 금지’ 조항은 삭제될 전망이다. 군인 등이 직무를 수행하다 부상 등 피해를 입게 됐을 때, 법률이 정하는 보상을 받는 것 외에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할 수 없게 한 이중배상 금지 조항은 유신헌법 때 신설됐다. 베트남 전쟁에 파병된 국군 희생자들이 늘어나면서 국가배상청구가 증가해 재정 부담이 생기자 박정희 정권이 만든 것이다. 정치권은 이 조항 폐지에 이견이 없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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