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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누가 더 위험한가

등록 2013-11-08 19:49수정 2013-11-11 10:32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통합진보당은 위험한 존재다.’ 법무부가 특별팀(위헌정당·단체 대책TF)까지 만들어 연구 검토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 “(통합진보당을) 존치할 경우 북한과 함께 우리나라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우려가 상당히 높다”(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서)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나라 존립을 위협하는 존재로 여겨서인지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부의 두려움은 여간 크지 않은 듯하다. 대통령이 유럽 순방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열린 국무회의에서 해산 심판 청구를 긴급안건으로 상정해 처리했다. 프랑스 파리에 머물던 박근혜 대통령은 꼭두새벽(현지시각)에 전자결재로 이를 승인했다. 또 헌법재판소의 논의에 시간이 걸릴 경우에 대비해 우선 통합진보당의 모든 활동을 정지시키고, 오는 15일로 예정된 정부보조금 지급이라도 중지해 달라는 가처분신청까지 냈다.

강제로 해산시켜야 할 만큼 통합진보당이 과연 위험하고 위협적인 존재인가?

정부는 통합진보당의 목적(사상)과 활동(행동)이 모두 “민주적 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이 내세운 이념과 강령인 ‘진보적 민주주의’와 ‘민중주권주의’가 북한 정권의 그것을 계승하거나 동일하다고 말한다. 용어가 우연히 북한과 같을 뿐인지, 아니면 내적인 긴밀성이 있는지는 앞으로 헌재에서 따질 일이다. 하지만 설령 통합진보당의 사상이 북한 이념과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그 이념이 대한민국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북한이 가장 중시하는 ‘자주적 통일’에 합의한 7·4 공동성명(1972년)이나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에 일부 동의한 6·15 공동선언(2000년) 채택으로 나라가 조금이라도 흔들렸는가?

아르오(RO)의 활동으로 미뤄볼 때 통합진보당이 나라에 위험하다는 논리 역시 허점투성이다. 아르오가 정말 남한 사회의 무력 전복을 노린 혁명조직인지, 북한과 연계돼 있는 비밀조직인지도 아직 최종 판정이 나지 않았다. 앞으로 현행법상 유죄 판결이 내려지더라도 그 조직이 통합진보당을 대표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더구나 통합진보당은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정치적으로 지금이 가장 허약한 상태다. 두차례 분당 사태로 사회민주주의자 등이 떨어져나가면서 야권 전체뿐 아니라 진보정치권에서도 고립돼 있다. 당 지지율 역시 역대로 가장 낮으며, 강고한 종북 프레임을 빠져나올 가능성도 높아 보이지 않는다. 위험하기는커녕 정치적으로 자칫 소멸할 수 있는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처지다.

민주주의를 진짜로 위협하는 일은 더 진보적인 민주사회를 만들겠다든지 노동자와 농민 등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을 꿈꾸는 것 자체를 위험시하는 발상이다. 현존하는 사회체제나 헌법질서를 넘어서는 사상까지 포용하는 게 민주주의다. 더 나은 새 세상을 꿈꾸는 ‘불온한’ 생각들 때문에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발전해왔다. 사상에 대한 판단을 선거라는 국민의 선택에 맡기지 않고 정부가 재단하려는 것이야말로 위험하다. ‘한국적 민주주의’만 강제하려고 했던 박정희의 유신독재 시대나 다를 바가 없다.

정부가 법과 정의를 앞장서 허물어뜨리거나 법적 잣대를 멋대로 적용하는 것이 ‘민주적 질서’에 더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위협이다.

김종철 기자
김종철 기자

수십년 동안 참교육을 실천해온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대해 위법적인 시행령 조항을 들어 법 테두리 바깥으로 내몰고, 전공노(전국공무원노동조합)에 대해서는 노조 설립 자체를 사실상 거부하는 일은 사회 안정과 통합을 깨는 행위다. 선거개입이라는 불법을 저지른 국정원과 사이버사령부 등 국가기관을 갖은 방법으로 두둔하고, 정의를 실현해야 할 검찰 조직을 정권 입맛에 맞게 재편한 뒤 편파적인 수사를 하는 짓도 국가에 대한 국민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이쯤 되면 박근혜 정부야말로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존재가 아닌가.

김종철 정치부 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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