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정당해산’ 청구] 법무부 논리 따져보니
5일 법무부가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면서 내놓은 주장은 하나로 요약된다. 이석기 의원이 주도했다는 이른바 ‘아르오’(RO) 활동은 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하는데, 통합진보당은 아르오와 한몸으로 ‘종북정당’이기 때문에 해산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르오 관련 사건은 현재 재판 중이고 사실관계가 확정되지도 않았다. 이 때문에 법무부가 통합진보당에 부정적인 여론을 등에 업고 서둘러 정당해산심판 청구를 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김일성 사상?
“국민 전체 아닌 민중주권주의, 북한 주장과 동일”
VS “정당은 특정계파 대변…‘민중’에 지나친 의미 부여” ■ 통합진보당 전체가 종북정당? 헌법 8조는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면 정당해산심판에 의해 해산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통합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배했는지 여부가 정당해산심판의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법무부는 통합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이 모두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며 “당 전체가 종북정당화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선 통합진보당 ‘목적’의 위헌성에 대해 법무부는 이들이 내세운 ‘진보적 민주주의’를 문제삼았다. 민중주권주의에 대해서도 “국민 모두가 주권을 갖는다는 국민주권주의에 반한다”며 위헌적이라고 봤다. 법무부는 통합진보당 강령과 공약 중 ‘대외적 지배종속관계 극복, 종속적 한-미 동맹체제 해체’ 등을 “북한의 주장과 동일하다”며 위헌적이라고 해석하고, 비례대표 부정경선, 국회 본회의장 최루탄 투척 등을 근거로 들며 “의회제와 정당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위헌적 행태”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당은 특정 계파나 세력을 대변한다. 법무부가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이라는 말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한 것 같다. 북한 주장과 같다고 친북으로 규정하는 것도 일차원적이다. 창당한 지 10년이 지난 정당이고 선거도 여러번 치렀다. 강령이 문제된 적 없다가 갑자기 이걸 문제삼으니 뜬금없다”고 비판했다.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당헌상 목적 등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어긋난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구체적 위험’에 이를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당내 부정경선의 경우 헌법 위반 문제가 아니라 법률 위반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부장판사도 “한-미 동맹을 비난한다고 해서 민주적 기본질서를 어기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실관계 입증안된 RO와 진보당 ‘한몸’?
“내란음모·전국봉기 강조…발각 뒤에도 집회 계속”
VS “주사파 다수 있더라도 진보당 전체 동일시 안돼” ■ 아르오=통합진보당? 법무부가 통합진보당 ‘활동’의 위헌성 근거로 제시한 핵심 사례는 아르오 사건이다. 법무부는 “아르오는 지난 3월 내란을 모의하면서, 총공격 명령시 봉기할 것을 강조했다. 통합진보당은 아르오의 내란음모 행위가 발각되자 조직적인 공안탄압 중단 운동을 해왔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르오 사건은 현재 수원지방법원에서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아르오라는 조직의 성격과 어떤 활동을 했는지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국가정보원이 ‘(천주교) 절두산 성지’라는 표현을 ‘결전 성지’ 등으로 옮기는 등 녹취록 일부를 왜곡·조작했다는 의혹도 있다. 아르오를 둘러싼 검찰 주장이 인정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아르오=진보당’이 입증돼야 하기 때문이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르오가 ‘주사파 혁명조직’이라고 판명난다고 하더라도 아르오를 통합진보당 전체와 동일시할 수 없다. 같은 맥락에서 통합진보당 내에 ‘주사파’가 다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을 통합진보당 전체와 동일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2009년 법제처가 발간한 ‘헌법주석서’는 “정당해산 사유는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야당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그만큼 정당해산심판 청구와 결정에 신중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종수 교수는 “독일이 정당해산 결정을 했던 건 서독이 정치적으로 불안정했던 1950년대다. 이후 독일은 국민들이 그런 정당을 외면하도록 할 뿐 강제해산은 없었다. 지난해 네오나치당이라는 극우정당이 외국인 여러명을 살해했는데,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라는 여론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독일 정부는 하지 않고 있다. 대신 이들의 활동상을 국민들에게 소상히 알려준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는 대로 불편부당한 필요한 조처를 취할 것이고, 재발 방지책도 마련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이라는 ‘국기 문란’ 사건은 사법부 판단을 기다리고, 오히려 민주사회에서 엄격하고 신중해야 할 정당해산심판 청구는 서둘러 강행한 꼴이다. 이에 대해 정점식 법무부 위헌정당·단체 관련 대책 티에프(TF) 팀장은 “우리는 이렇게 판단하니, 우리 판단이 옳은지 그른지 헌재에서 심의해주시기 바란다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헌재 관계자는 “헌재가 따로 사실관계를 구체적으로 심리해야 할 듯하다. 증거조사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여현호 선임기자 wonchul@hani.co.kr
“국민 전체 아닌 민중주권주의, 북한 주장과 동일”
VS “정당은 특정계파 대변…‘민중’에 지나친 의미 부여” ■ 통합진보당 전체가 종북정당? 헌법 8조는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면 정당해산심판에 의해 해산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통합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배했는지 여부가 정당해산심판의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법무부는 통합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이 모두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며 “당 전체가 종북정당화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선 통합진보당 ‘목적’의 위헌성에 대해 법무부는 이들이 내세운 ‘진보적 민주주의’를 문제삼았다. 민중주권주의에 대해서도 “국민 모두가 주권을 갖는다는 국민주권주의에 반한다”며 위헌적이라고 봤다. 법무부는 통합진보당 강령과 공약 중 ‘대외적 지배종속관계 극복, 종속적 한-미 동맹체제 해체’ 등을 “북한의 주장과 동일하다”며 위헌적이라고 해석하고, 비례대표 부정경선, 국회 본회의장 최루탄 투척 등을 근거로 들며 “의회제와 정당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위헌적 행태”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당은 특정 계파나 세력을 대변한다. 법무부가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이라는 말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한 것 같다. 북한 주장과 같다고 친북으로 규정하는 것도 일차원적이다. 창당한 지 10년이 지난 정당이고 선거도 여러번 치렀다. 강령이 문제된 적 없다가 갑자기 이걸 문제삼으니 뜬금없다”고 비판했다.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당헌상 목적 등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어긋난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구체적 위험’에 이를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당내 부정경선의 경우 헌법 위반 문제가 아니라 법률 위반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부장판사도 “한-미 동맹을 비난한다고 해서 민주적 기본질서를 어기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실관계 입증안된 RO와 진보당 ‘한몸’?
“내란음모·전국봉기 강조…발각 뒤에도 집회 계속”
VS “주사파 다수 있더라도 진보당 전체 동일시 안돼” ■ 아르오=통합진보당? 법무부가 통합진보당 ‘활동’의 위헌성 근거로 제시한 핵심 사례는 아르오 사건이다. 법무부는 “아르오는 지난 3월 내란을 모의하면서, 총공격 명령시 봉기할 것을 강조했다. 통합진보당은 아르오의 내란음모 행위가 발각되자 조직적인 공안탄압 중단 운동을 해왔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르오 사건은 현재 수원지방법원에서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아르오라는 조직의 성격과 어떤 활동을 했는지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국가정보원이 ‘(천주교) 절두산 성지’라는 표현을 ‘결전 성지’ 등으로 옮기는 등 녹취록 일부를 왜곡·조작했다는 의혹도 있다. 아르오를 둘러싼 검찰 주장이 인정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아르오=진보당’이 입증돼야 하기 때문이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르오가 ‘주사파 혁명조직’이라고 판명난다고 하더라도 아르오를 통합진보당 전체와 동일시할 수 없다. 같은 맥락에서 통합진보당 내에 ‘주사파’가 다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을 통합진보당 전체와 동일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2009년 법제처가 발간한 ‘헌법주석서’는 “정당해산 사유는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야당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그만큼 정당해산심판 청구와 결정에 신중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종수 교수는 “독일이 정당해산 결정을 했던 건 서독이 정치적으로 불안정했던 1950년대다. 이후 독일은 국민들이 그런 정당을 외면하도록 할 뿐 강제해산은 없었다. 지난해 네오나치당이라는 극우정당이 외국인 여러명을 살해했는데,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라는 여론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독일 정부는 하지 않고 있다. 대신 이들의 활동상을 국민들에게 소상히 알려준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는 대로 불편부당한 필요한 조처를 취할 것이고, 재발 방지책도 마련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이라는 ‘국기 문란’ 사건은 사법부 판단을 기다리고, 오히려 민주사회에서 엄격하고 신중해야 할 정당해산심판 청구는 서둘러 강행한 꼴이다. 이에 대해 정점식 법무부 위헌정당·단체 관련 대책 티에프(TF) 팀장은 “우리는 이렇게 판단하니, 우리 판단이 옳은지 그른지 헌재에서 심의해주시기 바란다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헌재 관계자는 “헌재가 따로 사실관계를 구체적으로 심리해야 할 듯하다. 증거조사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여현호 선임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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