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의 오병윤 원내대표(앞줄 가운데)와 소속 의원들이 4일 낮 국회 본관 앞에서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비상식적 발언·행동 사과하고
반박할 건 반박하자 했는데
정작 회견에선 딴소리” 지적
‘날조 공안탄압’ 논리에 묶여
앞으로 해법 찾기도 깜깜
반박할 건 반박하자 했는데
정작 회견에선 딴소리” 지적
‘날조 공안탄압’ 논리에 묶여
앞으로 해법 찾기도 깜깜
내란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4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고, 이날 밤 이 의원이 구인되면서 통합진보당은 정치적 기로에 놓였다. 정치권에선 국가정보원이 지하혁명조직 ‘RO’(아르오·일명 산악회)의 조직원이라고 주장하는 김미희·김재연 의원으로 국정원 수사가 확대되고, 주요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당의 존립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진보당 안에서는 지난달 28일 국정원 압수수색 뒤 통합진보당 내 일부에서 제기된 즉각적 진상조사와 적절한 사과 및 유감표명 요구가 당권파 지도부에 의해 계속 묵살되면서 국민의 신뢰를 상실하고 야권에서조차 고립됐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통합진보당 내 핵심 당직자는 “압수수색 다음날 이석기 의원이 국회에 나온 뒤 대략적으로나마 사태를 파악했다.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발언이나 행동에 대해서는 사과 등 입장을 밝히고 국정원이 불법적으로 흘린 녹취록에 대해 세세하게 반박하려고 했는데 정작 기자회견이나 성명 발표 과정에서는 매번 그렇게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당직자는 “(애초 당내에서 한) 합의와 달리 모임의 존재, 발언 등 거짓해명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여론전에서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국정원의 압수수색이 시작된 사건 초기에 사실관계를 좀더 명확히 설명하면서, 국정원의 공안탄압론을 제기했다면 진보당이 현재와 같은 고립무원으로 내몰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만시지탄’이다.
지난해 비례대표 경선 뒤 분당 사태를 겪으며 진보당 지도부가 이른바 ‘경기동부’ 중심으로 공고화되고 이들을 견제할 만한 세력이 사라진 ‘패권주의 고착화’가 이 의원을 계속해서 감싸는 토양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 일각에선 사건 초반 문제가 된 ‘이석기 5월 모임’ 참석자를 당직 등 일선에서 일단 배제하고, 진상조사위를 꾸리자는 의견이 나왔었다. 하지만 “날조된 공안탄압”이라는 ‘당권파’의 논리를 넘어설 수 없는 내부 구조 때문에 당의 존립을 걱정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한 당직자는 “초기에 제대로 대응했다면 정당 해산 프레임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인데, 오히려 국정원이 짜놓은 프레임에 말려들면서 정당의 기능을 잃는 수순을 스스로 밟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체포동의안 처리와 이 의원 구인 이후 진보당의 선택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위기에 처한 진보당이 앞으로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국민적 신뢰 회복 여부는 물론 당의 존폐가 판가름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당내 상황을 볼 때 합리적 해법을 찾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정책 쪽에 몸담고 있는 한 당직자는 “다른 다섯 의원의 의정활동이 마비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해 오해를 키운 상황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면서도 “체포동의안 통과 전에는 해법을 찾아보자는 말이라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마저 묵살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체포동의안 통과 이전까지는 그래도 모임의 존재, 발언 등 최소한 드러난 사실만큼은 인정·사과하고 국정원의 왜곡을 알리며 정치적 살길을 찾아보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이석기 의원의 구인까지 이뤄지면서 이런 논의조차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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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체포동의안 통과 이후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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