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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손자뻘 국회의원 앞에 엎드려
“아이고, 우리 좀 살려주이소”

등록 2012-05-27 20:46수정 2012-05-28 15:41

경남 밀양의 송전탑 민원현장을 찾아간 초생달 회원들과 현지 주민들이 서로 맞절을 올리고 있다.  창원일보 제공
경남 밀양의 송전탑 민원현장을 찾아간 초생달 회원들과 현지 주민들이 서로 맞절을 올리고 있다. 창원일보 제공
[뉴스쏙] 19대국회 초선의원 민생속으로
19대 국회 개원일(5월30일)을 일주일 앞둔 23일, 11명의 초선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경상남도 밀양을 내려갔다. 억울하고, 답답하고, 눈물나는, 힘없는 이들의 삶과 함께하겠다는 각오를 가슴에 새기는 자리라고 해서 <한겨레>가 그 길을 함께했다.

밀양 마을회관 찾은 당선자 11명

“아이고, 우리 좀 살려주이소. 제발예.”

지난 23일 오전 11시 경남 밀양시 상동면 고정리 고답마을 마을회관 앞마당. 낫처럼 휜 허리에 실파 뿌리처럼 머리가 허옇게 센, 앞줄의 할머니들이 일제히 바닥에 엎드렸다. 할머니들은 몇 번이고 큰절을 하며 흐느꼈다. 통곡 같은 큰절을 올리는 할머니들을 다급히 부둥키는 당선자들의 눈도 벌써 붉어져 있었다.

이날 밀양을 찾은 19대 당선자들은 모두 11명. 이날 마을회관 앞마당에 모인 노인들은 100여명은 족히 넘어 보였다. 국회의원들이 온다는 말에 이웃마을에서도 저마다 넘어온 탓이다. 감나무 줄기처럼 주름지고 패인 노인들의 얼굴엔 기대감과 초조함이 가득했다.

이날은 민주통합당 초선 당선자 모임인 ‘초생달’이 처음으로 민생 현장을 방문한 날이었다. 초생달은 ‘초선 의원, 민생현장으로 달려가다’의 약자로 국회의원들이 민생 문제가 있는 곳을 직접 찾아 주민들과 직접 대화하고 해법을 찾는다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밀양을 방문한 이들은 초생달 간사인 진선미, 홍의락 당선자를 비롯해 홍종학, 김기식, 남윤인순, 유은혜, 장하나, 김광진 당선자 등 11명이었다.

할머니들 바닥 엎드려 큰 절하며 통곡하자
다급히 부둥켜 안는 당선자들 눈도 붉어져…

주민들은 절박했다.

오죽하면 손자 같은 이들에게 몸부터 엎드리고 봤을까. 당선자들이 찾은 곳은 현재 정부가 신고리원전 생산전력을 영남 지역에 공급하기 위해 아파트 40층 높이의 송전탑을 건설 중이었다. 부산 기장군, 경남 양산시, 밀양시, 창녕군 등 5개 시군에 건설될 예정인 191기의 송전탑 가운데 69기가 밀양 5개면에 집중돼 있었다.

송전탑 건설은 주민들과의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2008년부터 강행됐다. 송전탑 건설로 밭농사·논농사를 이어갈 수 없는 집들이 속출했다. 생계가 막막해진 주민들은 싸움을 시작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급기야 지난 1월16일에는 밀양시 산외면 희곡리에서 주민 이치우(74)씨가 온몸을 태워 목숨을 끊었다. 이들의 절박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높으신 분’들은 없었다. 그 와중에 11명의 국회의원 당선자를 맞은 터였다.

주민들은 “우리는 돈 같은 것 필요 없다”며 “그냥 예전처럼 농사짓고 살 게만 해달라”고 호소했다. 분신 자살한 이씨의 경우 송전탑으로 항공방제를 할 수 없어 밤농사를 포기할 상황이었다. 시가 1억5천만원 짜리 밤밭을 포기하는 대가로 한국전력이 제시한 보상액은 154만원이었다.

한 시간 반 남짓 주민들의 호소를 접한 당선자들은 한국전력 밀양지사를 찾아 주민들의 상황을 전달하고 송전탑 건설을 중지해줄 것을 요청했다.

“외침마저 힘겨운 사람들…어쩔수없이 참고사는 사람들…
산 목소리 듣는 것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아”

눈물과 땀내음이 가득한 현장은 마음을 움직이게 마련이다. 정치의 본질을 현장을 다시 찾아 보자는 것이 초선들의 생각이다.

김기식 당선자는 “현장 주민의 목소리를 ‘페이퍼’(보고서)가 아니라, 살아 있는 목소리를 듣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됐다”며 “시민운동가로서 20년 동안 현장에서 투쟁해 왔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국회의원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더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교수 출신의 홍종학 당선자는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그는 “그만큼 절박하다는 걸 느꼈고 당선자로서 책임감을 무겁게 느낀다”고 말을 이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굉장한 소리를 낼 수 있는 현장도 있지만, 그럴 힘도 없어 외치는 것마저 힘겨운 사람들이 있다. 초생달은 앞으로도 절박한 문제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참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 현장을 찾아가려고 한다.”

사진 찍기 좋은 곳이 아니라, 실제 도움이 절실한 곳을 찾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앞으로 송전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 안에서 꾸준히 활동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남윤인순 당선자는 “송전탑 문제는 국회 상임위 가운데 지식경제위원회 사안으로 지경위 소속 위원을 중심으로 함께 사안을 짚어갈 생각”이라며 “(송전탑이 밀양에 집중된 상황에 대해) 국회 차원에서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벌이고 해법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중장기적으로는 민주당에서도 공약하고 있는 원전 정책을 재검토하고 에너지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밀양/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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