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4일 국회에서 열린 당 의원총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 죽게 생겼으니 이재명 대표가 쇄신의 칼을 휘둘러라.” “이재명 대표는 재신임을 받아야 한다.”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김남국 의원의 ‘가상자산 투기 논란’으로 도덕성 위기를 맞은 더불어민주당이 14일 연 쇄신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은 이 대표를 향한 성토를 쏟아냈다. 각종 의혹 앞에서 좌고우면하다 늑장 대응으로 번번이 위기 대응의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것이다. 의총 뒤 내놓은 ‘의원 일동’ 명의로 내놓은 결의문에서 민주당은 “국민 눈높이에 맞추지 못했다. 통렬하게 반성한다”며 “재창당의 각오로 근본적 반성과 본격적인 쇄신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오후 4시부터 밤 10시까지 국회에서 이어진 마라톤 의총은 바짝 긴장된 분위기 속에 시작됐다. 박광온 원내대표는 “오늘은 결론을 정해놓고 하는 의원총회가 아니다. 이 자리에서 어떤 형식이든 국민들에게 우리의 다짐을 보여주는 결정을 하자”고 말했다. 이어 지도부가 회의를 취재진이 없는 비공개로 전환하려 하자 몇몇 의원은 “숨길 이유가 있느냐”(신동근 의원), “국민의 대표로서 책임 있게 이야기해야 한다”(설훈 의원)며 제지했다. 의총은 계획대로 비공개로 진행됐지만, 민주당 의원 대부분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토론에서 참석자들은 당내 도덕 불감증과 지도부의 안이한 대처 등을 두고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갔다.
이날 저녁 의총 중간에 기자 브리핑에 나선 이소영 원내대변인은 “모든 의원들의 엄중한 상황 인식하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당의 대응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터져 나온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이 대변인은 또 “(당이) 국민과 당원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 결과, 국민 절반 이상이 민주당이 (돈봉투 의혹 등에) 잘못 대처하고 있다고 답했다. 국민들은 당원이나 의원들보다 더 가혹한 평가를 하고 있다”며 “우리 스스로 냉정한 판단과 철저한 쇄신을 감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시사점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 대표의 거취 문제를 둘러싼 직접적인 압박도 나왔다. 이 대표가 민주당을 이끄는 한, 진정성 있는 쇄신은 어렵다는 주장이다. ‘비이재명계’(비명계)의 한 중진 의원은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며 이 대표에게 “대표직을 내려놓으라”고 촉구했다고 한다. 한 재선 의원도 “이 대표의 재신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한 걸로 전해졌다.
이재명 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14일 국회에서 열린 당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이재명 지도부’를 앞장서 성토해왔던 비명계 의원 일부는 되레 이 대표에게 힘을 싣기도 했다. 박용진 의원은 “이 대표가 쇄신의 칼을 휘둘러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 대표가 여러 논란과 비판의 대상이라고 하더라도, 이 사안(김남국 투기 의혹)의 중심에 서야 하니 뒷걸음질 치지 말아달라”고 의총에서 말했다고 기자들에게 전했다. ‘대장동 특혜 개발 의혹’ 등으로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자칫 ‘내로남불’로 비칠까 우려해 당내 현안에 미온적으로 대처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의총 뒤 “위법이 아니라는 이유로, 동료 의원이라는 이유로, 우리 자신에게 관대하고, 해야 할 일을 방기하지 않았는지 자성한다”며 5개 항을 담은 결의문을 내놨다. 이들은 △김남국 의원에 대한 추가조사 △가상자산 재산신고 법안 5월 중 통과 △윤리규범의 엄격한 적용 △‘상시 감찰·즉시 조사·신속 결정’ 등 윤리기구 권한·기능 강화 △전당대회 투명성·민주성 강화 위한 당 혁신기구 설치를 약속했다. 이들은 품위유지, 청렴의무, 이해충돌 방지 의무, 이권개입 금지 등을 담고 있는 민주당 윤리규범을 “제1의 판단기준으로 삼겠다”고 했다. 또 “가상자산을 재산신고와 이해충돌 내역에 포함시켜서 법의 미비점과 제도 허점을 보완하겠다”며 “5월 안에 법안이 통과되는 즉시 국회의원을 포함한 모든 고위 공직자가 가상자산을 신고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원내대변인은 이후 브리핑에서 “이날 의총에선 결의문 작성 전 30여명의 의원이 발언했고 결의문 문구를 제안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분들이 참여했다”며 “평소와 달리 초선의원들의 발언이 굉장히 많았고, 한 번도 의총에서 발언하지 않은 의원들도 (개원 뒤) 3년 만에 첫 발언을 했다. 그만큼 열기가 뜨겁고 해결 의지가 보였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엄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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