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 정의당 원내대표가 12일 국회에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등 논의를 위해 열린 전국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6·1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정의당이 이은주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꾸렸다. 당의 존립 위기감이 팽배한 가운데 9월 전당대회에서 새 지도부를 선출하기까지 격렬한 당내 노선투쟁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의당은 12일 국회에서 전국위원회를 열고 이은주 원내대표를 비대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임기는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9월27일까지고, 이 위원장 외에 3명 이내의 비대위원이 추가로 선임된다. 이동영 수석대변인은 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오늘 구성된 비대위는 앞으로 정의당이 누구를 대표할 것인가, 정의당이 누구와 함께 정치를 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답을 찾고 정의당의 정체성, 노선과 입장, 태도를 분명히 확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전국위에선 6개월 이상 또는 기한을 정하지 않은 ‘혁신 비대위’를 꾸리는 방안도 논의됐으나 결국 선거(9월 전당대회)를 통해 정통성을 갖춘 지도부가 혁신에 나서는 게 맞다는 데 뜻이 모였다.
앞서 지난 2일 여영국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지방선거 이튿날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총사퇴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정의당 당선자가 광역·기초 의원 통틀어 9명에 그친 데 따른 것이다. 이는 2018년 지방선거(37명 당선)와 비교하면 4분의 1 토막이다. 3월 대선에서 심상정 후보가 고작 2.37%(80만표 가량)를 얻은 데 이어 풀뿌리 조직마저 무너지자 “당이 소멸 위기”(박원석 전 정책위의장)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지방선거 현장에서 뛴 이들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올해 4월 이후 분위기가 크게 나빠졌다고 했다. 민주당이 밀어붙인 검찰청법 개정안에 동참한 뒤 여론의 역풍을 절감하고 이후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기권했으나 한발 늦었다는 것이다. 조성주 전 정책위 부의장은 “애초 다 반대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양당 구조’에 질린 유권자들을 향해 ‘제3정당에 기회를 달라’고 구애해온 정의당이 조국 사태와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 국면 등 결정적인 상황마다 민주당과 정치적 타협을 반복하다 스스로 존재감을 깎아먹은 데 있단 지적이 나온다. 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은 “진보정당 주류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부터 민주당 전신 세력과 연합을 해오던 게 뿌리 깊게 체질화됐다”며 “민주당엔 실망한 유권자들에게 정의당은 일관된 정치 행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표를 주기 모호한 세력이 됐다”고 짚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실패한 이기중 전 서울 관악구의원은 “(그 결과) 정의당은 범민주 진영에 속해 있으면서 민주당 지지자들이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나 비례나 기초 의원에 한표씩 주는 정당이 됐다”고 했다.
당 안팎의 인사들은 “민주당과 동조화했던 과거에 대한 반성과 이를 벗어나는 노력”(이기중)을 통해 “재창당 수준의 쇄신과 새 출발”(조성주)을 해야 하며 “독자적이고 자기 색깔이 뚜렷한 정치 행위”(장석준)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 2중대’ 프레임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심상정·노회찬을 이을 새 인물을 키워내는 것도 과제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인물이 곧 혁신”이라며 새 지도부의 면면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그 인물의 첫번째 메시지에서 국민들이 ‘정의당이 바뀌려고 하는구나’라고 느끼면 쇄신할 수 있고, 느끼지 못한다면 정의당은 다음 총선까지 갈 것도 없이 조용히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