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왼쪽)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을 방문,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과 인사하고 있다. 이날 최 전 감사원장은 의원회관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의 사무실을 찾아 인사를 나눴다.연합뉴스
“정치신인답지 않은 ‘입당 활용법’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의 한 수도권 의원은 최근 입당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행보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준석 대표도 22일 <문화방송>(MBC) 라디오에서 “결단이 빠르고 친화력이 생각보다 대단하다. 굉장히 도전적이신 분”이라고 높게 평가했습니다. 3주 전까지 감사원장이었던 그는 새내기 국민의힘 당원입니다. 입당 일주일을 맞은 최 원장의 행보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당심 속으로’입니다. 상대적으로 낮은 인지도와 정치 경험이 없는 후발 주자로서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당 조직을 구석구석 훑으며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는 평가인데요. 제1야당의 ‘평당원’으로서 낮은 자세로 당과 함께 하겠다고 밝힌 그의 지난 일주일은 어땠을까요?
태영호 만나 “우리 정부, 북한 인권문제 소홀”
지난 15일 입당 이후 최 전 원장 캠프에서 공개한 일정은 모두 당내 인사들과의 상견례였습니다. 최 전 원장은 22일 ‘의원회관 순회 인사’로 공개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신입 당원인 만큼 의원들에게 직접 첫 인사를 건네기 위해서입니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한 층만 출입할 수 있었는데, 국민의힘 의원들이 가장 많은 9층을 선택했고 제일 처음 찾은 곳은 북한에서 탈북한 고위외교관 출신인 태영호 의원실입니다. 최 전 원장은 이날 의원회관에서 기자들을 만나 “우리 여러 가지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안보와 북한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그간 우리 정부가 많이 소홀히 했던 게 북한 주민 인권 문제”라고 안보를 강조했습니다.
이어 최 전 원장은 부산에서 5선을 한 정의화 전 국회의장과 비공개로 만나 정치적 조언을 구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 등 당내 인사를 우선적으로 만나는 최 전 원장의 행보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 보수색이 옅은 인사들과의 교류에 비중을 두며 중도외연 확장을 노리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는 뚜렷하게 대조됩니다.
최 전 원장은 의원들을 상대로 깍듯한 ‘전화 인사’도 병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정상의 한계와 코로나19 재확산이 심각한 상황을 고려해 발길이 닿지 못하는 곳에는 “만나서 인사드려야 하는데 전화로 첫인사를 드려 죄송하다”며 일일이 전화를 돌리고 있다는 겁니다. 원로 정치인들에게 전화에선 “신입당원 최재형입니다”라며 인사한다고 합니다. 최 전 원장 캠프의 한 관계자는 <한겨레>에 “사람 만나서 인사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화를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며 “원로 정치인과 현역 의원 등에게 두루 첫 인사를 드리고 있다. 현역 의원들에게는 전원 전화 드리는 게 목표”고 전했습니다. 국민의힘 사무처도 찾아 인사하는 등 당내 구석구석을 꼼꼼히 훑고 있습니다.
그는 3주 전까지도 감사원장이었고, 이전엔 법관으로만 지내온 인물입니다. 정치적 기반이 전혀 없는 최 전 원장으로서는 ‘당내 우군’을 확보하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당내 대선 경선을 거쳐야 하는 상황에서, 세력 확보가 최우선 과제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당내 경선 첫 컷오프 일정이 다음 달로 다가오면서 명실상부한 제1야당 대표 주자로 입지를 다지려는 모습입니다. 엘리트 꽃길만 밟아온 그가 이처럼 모드를 급전환한 데는 김영우 전 의원 등 여의도 출신들의 조언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최 전 원장이 ‘줄서기 구태 정치로 보일 수 있다’며 캠프에 합류한 정치인 공개는 취소됐지만 당내 조력자들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현역으로는 조해진·김미애·김용판·정경희·박대출·최승재 의원 등이 거론되고, 원외에서는 정 전 의장을 비롯해 이수원 전 국회의장 비서실장, 천하람 전남 순천 당협위원장 등이 힘을 보탤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원내·외 정치인들의 대선주자 조력을 허용하면서 최 전 원장에게는 사람이 쉽게 붙고 있습니다. 당 바깥 주자인 윤 전 총장 지원을 금지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그의 당심 행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열쇳말은 ‘피케이’(부울경·PK)입니다. 경남 진해에서 태어난 최 전 원장의 최대 지원 세력은 정의화·조해진·김미애·박대출 등 이 지역 전·현직 의원 그룹입니다. 입당 뒤 첫 공식 행사도 같은 당 김미애 의원의 지역구인 부산 해운대를 찾아 쓰레기 줍기 봉사를 하며 지역 당원들을 만난 일이었습니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과의 회동까지 이어지면서 피케이 지역을 세력화의 기반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읽힙니다. 최 전 원장의 피케이 끌어안기가 본격화되자 윤 전 총장도 다음주 부산을 찾기로 하면서 피케이 공략 전쟁에는 불이 붙을 전망입니다.
일주일 내내 당심에만 몰두하던 최 전 원장이 지난 21일 페이스북 계정을 열고 온라인 정치로 대국민 소통을 드디어 시작했습니다. 페이스북에는 커피를 내리거나 흰 머리를 염색하는 사진, 탁구를 하는 영상을 연이어 올리며 친근한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는데요. 첫 대국민 메시지를 내는 대선 도전 선언은 다음 주로 예고되고 있습니다. 감사원장이라는 자리에서 내려온 그가 ‘저자세 공략법’으로 당심을 얻으려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라는 더 높은 자리로 향하려는 건데요. ‘3주 전 감사원장’은 제1야당 평당원의 시간을 거쳐 ‘10개월 뒤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요.
장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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