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김기현 원내대표, 이 대표, 조수진 최고위원. 공동취재사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당내 우려와 사회적 논의 부족을 이유로 ‘차별금지법’ 제정에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 대표는 17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차별금지법에 대한 당내 논의를 많이 진행하지 않아서 당론이라고 할 만한 것이 형성되지 않았다. 당 구성원들의 우려와 반발이 있다면 제가 그걸 강행할 명분은 없다”고 말했다. 앞서 이 대표는 이날 아침 <불교방송> 라디오 인터뷰에서도 “입법 단계에 이르기에는 사회적 논의가 부족하다. 국민 상당수가 아직까지 이 법안에 대해 우려를 하고 있다면 서두를 필요는 없다”며 ‘시기상조론’을 폈다. 이 대표가 평소 ‘공정한 경쟁’을 누구보다 강조하고, 방송 인터뷰 등에서도 포괄적인 차별금지 입법에 대해 공감을 표명해왔다는 점에서, 그의 이날 발언에 실망감을 느끼는 국민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또 법안이 발의된 지 14년이나 지났는데도 “논의를 많이 진행하지 않아 당론이 없다”고 말한 것도 국민의힘이 그동안 제1야당으로서 책무를 방기해왔다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
현역 국회의원이 아닌데다 당내 세력마저 취약한 30대 청년 당대표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이 대표도 인터뷰에서 “입법 취지에 대한 제 개인의 생각과 우리 당의 정책화 의지는 온도 차가 있다. 방송하면서 패널로 이야기한 것은 개인 소신과 관점을 이야기한 것이었지 조직체의 의견이 아니었다. (당대표로서) 강단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최대한 발휘하겠지만, 정책은 최대다수의 합의를 통해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대표 말대로 법안 제정은 당대표의 의지만으로 밀어붙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당론이 정리되지 않고,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법을 기약 없이 미루는 것 역시 제1야당을 이끄는 지도자의 태도가 아니다. 공동체를 위해 꼭 필요한 법안이라면, 당원과 지지자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해 입법으로 이어지게 하는 게 진정한 리더십이다. 차별금지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인간의 존엄성’은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할 ‘헌법적 권리’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 대표는 “경쟁의 과정에서 소수자와 약자들을 넘어지게 하는 무수한 차별들을 그대로 둔 채 어떻게 공정 경쟁을 말할 수 있겠느냐”는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의 지적을 깊이 새겨듣기 바란다.
국민의힘이 소극적 태도로 일관한다면 차별금지법의 운명은 오롯이 더불어민주당의 의지에 맡겨질 수밖에 없는데, 민주당도 국민의힘 탓을 하며 슬그머니 한발 물러서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런 점에서 지난 15일 차별금지법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답한 다음에 말하겠다”고 한 이재명 경기지사의 태도는 실망스럽다. 여당의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인 그가 아직 정치적 거취도 정해지지 않은 전직 검찰총장 뒤에 숨는 모습은 ‘이재명답지’ 않다. 차별금지법 입법이 중대 고비를 맞은 이 시점에서 이 지사가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