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7일 차별금지법 입법에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혔다. “숙성된 논의가 있었다. 대부분의 사안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던 3일 전 발언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수술실 시시티브이 설치법안 취지엔 동의한다면서도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반응과도 비슷하다. ‘개혁적 보수’로서 개인의 이미지는 유지하면서 주요 정책에 있어서는 국민의힘의 기존 색깔과 맞춰가겠다는 행보다. 이 대표에게 주요 현안에 대한 입장을 거듭 묻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그가 말로만 개혁을 이야기하고 있다며 강한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불교방송> 인터뷰에서 차별금지법 관련 질문을 받고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 대표는 “제가 미국에서 보면 동성애와 동성혼 같은 것도 상당히 구분돼서 다뤄지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상당히 혼재되고 있다”며 “아직 입법의 단계에 이르기에는 사회적 논의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 14일 <한국방송> 라디오 인터뷰에서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는 숙성된 논의가 있었다. 범위가 포괄적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안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다만 제도화하는 과정에 있어서는 하나하나가 사회적 논의의 대상”이라면서도 “개인의 고유한, 예를 들어 성적 자기 정체성이나 이런 것에 대해서는 차별이 없어야 한다”고도 했다. “제도화 과정이 사회적 논의의 대상”이라면서도 공감을 나타냈기 때문에 그동안 차별금지법 논의 자체를 금기시했던 국민의힘의 태도 변화가 기대되기도 했다. 그러나 “시기상조”라는 이날 발언은 여전히 차별금지법 논의를 외면했던 제1야당의 태도를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은 “이 대표가 본인이 한 얘기를 뒤집은 것인데 스스로도 당 대표로서 말의 무게를 모를 리 없었을 것으로 본다”며 “당내 저항기류가 있었을 것이고 결국 이준석 대표가 당선됐다고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국민의힘은 안 바뀐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차별금지법 시기상조”라는 자신의 발언을 놓고 논란이 이어지자 이날 여영국 정의당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차별금지법에 대한 당론이 매번 확정되지 않았던 것은 논의 자체를 진행하는 게 두려워했기 때문”이라며 “일부 조항을 빼는 것보다는 그 자체로서 논의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저의 입장”이라며 수습에 나섰다.
정치권에서는 주요 현안에 실천 의지 없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답만 내놓는 이 대표를 향한 비판이 이어졌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공감은 하지만 신중해야 한다’ ‘공감은 하지만 시기상조다’ 같은 반응은 이 대표가 당대표 후보 시절 얘기했던 말과 맞지 않는 모습 같다. 민생을 위한 정치는 언제 시작되냐”고 꼬집었다.
‘원외 당대표’라는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주요 현안에 개혁적 의견만 밝히고 뒤로 물러서는 건 노회한 정치적 행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이준석이라는 청년 당대표에게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내 생각은 이렇지만, 당내 의견을 모아보겠다’고 명확히 밝히는 건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나이는 어리지만 노회한 정치인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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