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철인3종 선수 사망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고 최숙현 선수 사망 사건의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고 최숙현 선수의 트레이너였던 안아무개씨가 22일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안씨는 최 선수를 비롯한 경주시청 소속 철인3종(트라이애슬론) 선수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강제추행에 유사강간까지 한 혐의로 기소됐었다. 하루 전인 21일에는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코치가 심석희 선수를 3년 넘게 성폭행해온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조씨는 심 선수를 때려 고막을 다치게 한 혐의로도 징역 1년6개월이 확정돼 이미 복역했다.
두 사건 모두 체육계 폭력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우리 사회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공통점도 많다. 지도자가 선수의 인권을 장기간에 걸쳐 상습적으로 짓밟았다. 폭력 유형에는 성폭력이 빠지지 않았다. 선수는 저항할 수 없었고, 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릴 수도 없었다. 폭력을 감시하고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은 취약했고, 어디에서도 작동하지 않았다. 결국 선수는 외로움과 두려움을 무릅쓰면서 직접 폭로에 나서야 했고, 최 선수는 끝내 극단적 선택을 했다.
두 사건에 공통점이 많은 건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두 사건은 일선 지도자에서부터 최상층부까지 그물처럼 얽힌 체육계의 정실주의와 권위주의가 만들어낸 ‘위계에 의한 폭력’의 전형이다. 성적 지상주의와 스포츠 애국주의는 그 배후다. 심 선수의 용기 있는 폭로 이후 다른 선수들의 폭로가 이어졌음에도 최 선수의 비극을 막지 못했다. 체육계 폭력의 뿌리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 다시 한번 아프게 확인하는 계기였다.
최 선수의 희생 이후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일명 ‘최숙현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문화체육관광부 아래에 ‘스포츠윤리센터’가 설립되는 등 폭력 근절과 인권 보호를 위한 제도적 대책이 적잖이 마련됐다. 그런데도 지난해 10월 지도자가 선수를 폭행하고도 징계를 받지 않았다는 폭로가 나온 데서 보듯 갈 길은 아직 멀다.
심 선수는 이번 판결을 두고 “어딘가에 있을 피해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유사한 사건이 절대로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나 두 사건 모두 1심 형량이 인정된 피의 사실에 못 미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형량의 적정성이 상급심에서 더 깊게 검토되기를 바란다. 체육계의 폭력을 근절하는 데 사법부가 해야 할 역할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