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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다짐’ 뒷받침할 ‘쇄신책’ 안 보이는 이재용 사과

등록 2020-05-06 19:53수정 2020-05-07 02:41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월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월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경영권 승계와 무노조 경영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앞으로는 법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사과의 진정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구체적인 조처는 없이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다짐에 그치는 한계를 보였다. 삼성이 경영권 승계와 무노조 경영으로 인한 오랜 ‘흑역사’를 단절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더 강력한 쇄신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국민의 기대를 충족하기에는 미흡해 보인다.

이 부회장은 기자회견에서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저와 삼성을 둘러싸고 제기된 많은 논란은 근본적으로 이 문제에서 비롯됐다”며 “이제는 더는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무노조 경영에 대해 “삼성의 노사문화가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했다”며 “더는 삼성에서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언론·시민사회와의 소통과 준법감시에 대한 다짐도 밝혔다.

삼성은 지난 3년 반 동안 경영권 승계 및 무노조 경영과 관련해 각종 수사와 재판을 받아왔다. 삼성물산-제일모직 불공정 합병 의혹,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뇌물 공여,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사기 의혹, 노조파괴 사건이 줄을 이어 글로벌 기업이라는 위상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런 점에서 그룹 총수가 직접 국민 앞에서 사과한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발표에서는 구체적인 책임 인정, 재발 방지 대책, 피해자 구제와 같이 사과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처를 찾아볼 수 없다. “법을 어기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다”는 수준의 선언적이고 추상적인 다짐이 반복됐다. “제 아이들에게는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는 약속은 진일보했다고 볼 수 있지만, 10~20년 뒤의 일이어서 당장 체감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참여연대 등은 일제히 “말뿐인 사과”라고 지적했다.

경영권 승계의 경우 재판·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조심스러운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리한 합병으로 수조원의 이익을 얻은 이 부회장이 억울하게 당한 삼성물산 일반주주와 국민연금의 피해 구제를 외면한 것은 명분이 없다. 삼성이 과거의 잘못을 뼈저리게 뉘우치고, 환골탈태의 기회를 달라고 호소할 것으로 기대했던 국민이 보기에는 아쉬울 수밖에 없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사과를 권고하며 제시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조건을 충족했는지도 의문이다.

삼성은 2005년 안기부 엑스(X)파일 사건, 2008년 비자금 의혹 사건 등 대형 비리가 터질 때마다 총수 또는 2인자가 “실망시켜 죄송하다”며 국민에게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시일이 조금만 지나면 흐지부지되고 유사 사건이 재발해 지탄을 받았다. 이 부회장은 지금이라도 사과의 진정성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쇄신 조처를 내놔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을 면하기 위해 ‘억지춘향식 요식행위’에 그쳤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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