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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안태근 파기환송, ‘성폭력’ 면죄부일 수는 없다

등록 2020-01-09 18:04수정 2020-01-10 02:08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이 첫 공판에 출석하던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이 첫 공판에 출석하던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대법원이 9일 서지현 검사에게 인사 보복을 한 혐의로 1, 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던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법리적 판단에 따른 것이지만, 국민 법감정과 거리가 있는데다 피해자의 힘겨운 폭로와 싸움에도 불구하고 가해자가 법적으로 단죄받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또 한번 보여준 판결이라 아쉽다.

쟁점은 직권남용의 범위와 해석이었다. 부치지청(부장검사만 있는 작은 지청)에 연속 배치되지 않도록 하는 인사 원칙과 달리 2015년 8월 서 검사를 여주지청에 이어 통영지청으로 전보한 데 대해, 원심은 안 국장이 직권을 남용해 ‘의무 없는 일’을 실무검사에게 지시한 것으로 봤다. 반면 대법원은 인사권자와 실무자에게 모두 상당한 재량이 있다며, 이 원칙도 일의적·절대적이거나 다른 다양한 사항보다 일방적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사례가 검찰 인사 역사에 유일무이했던 점, 통영지청에 미리 내정됐던 다른 검사에게만 전보 의견을 물었던 점 등을 고려할 때, 직권남용 혐의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한 판단이 아닌가 싶다. 안 전 국장은 또 서 검사의 폭로 이후에야 사건을 알았다며 ‘기억이 없었으므로 인사 보복도 없었다’고 주장해왔는데, 당시 감찰관실에서 진상조사가 이뤄지고 임은정 검사가 문제제기를 했음에도 뒤늦게 알았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2010년 장례식장에서의 성추행 혐의는 공소시효가 지난데다 부당 사무감사 의혹은 검찰이 무혐의 처분해, 가해자에 대한 형사적 처벌은 어려워졌다. 서 검사의 폭로가 숨죽이고 있던 우리 사회의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검찰 내 ‘침묵의 카르텔’ 민낯을 드러냈지만, 가해자가 처벌받기는커녕 정작 본인은 제대로 된 가해자의 잘못 인정도, 진정한 사과도 받지 못하는 현실이 씁쓸하다. 수많은 #미투 관련 법안도 20대 국회 처리가 무산됐다.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성범죄’에 대한 면죄부로 받아들여지거나 #미투에 대한 폄훼로 이어져선 안 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서 검사는 판결 뒤 페이스북에 “저는 이겨가고 있는 것 같다. 제 생각보다 훨씬 더 크게”라고 썼다. 2년 전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그의 발언이 불러일으킨 거대한 흐름은 이제 누구도 되돌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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