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관련 ‘평화의 소녀상’이 부산의 일본총영사관 앞에 설치된 데 항의해 주한 대사와 부산총영사를 자국으로 불러들였다. 대사와 총영사를 송환한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강경 조처다. 일본은 한-일 통화스와프 협상 중단과 고위급 경제 협의 연기도 발표했다.
일본의 이번 조처는 부적절함을 넘어 적반하장에 가깝다. 부산에 설치된 소녀상은 촛불시민들이 12·28 위안부 문제 합의 1주년을 맞아 자발적으로 세운 것이다. 민간 차원에서 벌인 일에 반발해 대사를 본국에 소환하고 경제협력 활동을 중단하는 조처까지 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일본의 이런 강경 조처는 한국에서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다음 정부에서 12·28 합의 재협상 움직임이 일 것에 대비해 미리 쐐기를 박으려는 계산속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문제의 근본 원인이 12·28 합의 자체에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합의 당시 일본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법적 책임 인정을 비롯해 꼭 필요한 조처를 거의 취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위안부 피해자 지원용으로 10억엔을 내놓는 것으로 위안부 문제가 불가역적·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선언했다. 소녀상 설치가 일본의 책임 회피와 역사 외면에 대한 한국 시민들의 항의임을 일본 정부가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근본 문제에는 눈감은 채 소녀상을 철거하라며 초강경 보복행위를 하는 것은 참회와 정의를 외치는 목소리를 힘으로 짓누르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일본의 강경 조처에 빌미를 제공한 우리 정부의 무책임과 외교력 부재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애초 우리 정부가 10억엔 출연으로 사실상 모든 책임을 면제하는 합의를 해준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더구나 합의 직후부터 우리 정부가 10억엔을 받는 대가로 소녀상을 철거한다는 이면합의를 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일본 정부는 이번에도 소녀상 문제와 관련해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박근혜 정부가 자초한 외교 굴욕이다.
일본 정부가 보복 근거로 삼은 12·28 합의는 정의의 원칙을 훼손한 것인 만큼 원천적으로 잘못됐다. 일본은 보복 조처를 즉각 거둬들여야 마땅하다. 마침 법원은 12·28 합의와 관련한 협상 문서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정부는 이제라도 합의 내용을 모두 밝히고 국민의 뜻에 맞는 선택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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