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부의 ‘12·28 위안부 문제 합의’를 비판하는 집회·시위를 경찰이 과도하게 탄압하고 있다.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열린 집회에 사전 신고된 것보다 더 많은 인원이 참석했다는 이유만으로 주최 쪽을 수사하겠다고 나섰다.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노숙농성을 하는 대학생들이 침낭을 사용한 것도 ‘집회신고서에 적지 않은 물품’이라며 불법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런 식으로 꼬투리를 잡으려 들면 불법 딱지를 붙이지 못할 집회·시위가 없다.
경찰이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집회·시위를 불법으로 몰아간다면 이는 우리 헌법이 금하고 있는 ‘집회·시위에 대한 허가제’와 다름없다. 대학생들이 12·28 합의 폐기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에서 구호 몇 번 외친 것을 두고 경찰은 ‘미신고 집회’라며 무더기로 소환장까지 보냈다. 이 대학생들은 “그동안 많은 기자회견에서 구호 제창이 있었는데 출석요구서가 발송된 건 국정 교과서 반대와 한-일 협상안 반대 기자회견뿐이었다”고 말한다. 경찰이 정권 차원에서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사안에 대해 선별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경찰이 그동안에는 소녀상 주변의 집회·시위를 별 탈 없이 보장해오다가 12·28 합의로 정부에 대한 비판이 강해진 뒤 까탈스런 태도로 돌아선 것은 재량권을 멋대로 휘두르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똑같은 집회·시위라도 정권의 판단에 따라 보호 대상에서 탄압 대상으로 순식간에 뒤바뀔 수 있다니 기가 막힌다.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24년간 매주 열려온 수요시위를 두고 경찰이 이제 와서 “국민감정을 고려한 예외적인 허용”이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며 원칙과 예외의 개념조차 혼란스러워진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이 강조하는 ‘준법’ 집회·시위는 허망한 말장난일 뿐이다. 불법 여부를 가르는 기준부터가 ‘엿장수 마음대로’인데 어떻게 준법이 가능한가. 경찰이 정권에 대한 충성심 보이기에만 급급해 법 규정을 판단하고 적용한다면 더더욱 준법을 운위할 자격이 없다. 경찰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무리하게 소요죄를 적용했다가 망신을 샀고, 서울광장 집회를 집요하게 금지하려다가 법원으로부터 제지를 당했다. 경찰이 법리와 상식을 갖추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들이다. 그런 경찰에게 집회·시위의 사전 금지와 사후 규제의 막강한 권한을 맡기는 건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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