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정부가 28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안을 발표하고 이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선언했다. 하지만 두 나라 외교장관이 이날 서울에서 회담을 벌인 뒤 발표한 합의안은 진정한 해법과는 거리가 있다. 무엇보다 위안부 제도라는 ‘국가 범죄’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하지 않고 있다.
진정한 해법과는 거리가 있는 한-일 합의
두 나라 정부의 합의는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아베 신조 총리는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밝히며 △일본 정부 예산으로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사업을 벌이며 △두 나라 정부가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이 문제를 두고 서로 비판하는 것을 자제한다는 내용이다. 또 우리 정부는 서울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의 이전 등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이런 내용은 그동안 아베 정부가 위안부 문제 자체를 부인하기까지 한 것에 비하면 상당히 전향적임은 분명하다. 아베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언급하고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반성’한 것은 처음이기도 하다. 역사수정주의 입장에 서온 아베 정부로선 새 발걸음을 내디뎠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합의는 이전의 일본 정부가 제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못한 방안들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993년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이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발표한 뒤 95년 일본에서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이 발족했다. 이 기금이 97년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에게 200만엔을 처음 지급하면서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 이름의 사죄 서한을 전달했다. 이 방안은 일본 정부의 법적인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어서 해법이 되지 못했다. 일본 쪽이 내놓은 돈도 피해에 대한 배상금이 아니라 지원금 성격이었다. 이후 일본 정부는 2012년 이른바 ‘사사에 안’을 당시 이명박 정부에 제시했으나 이 또한 불충분했다. 이 안은 △일본 총리가 한국 대통령에게 사죄하고 △주한 일본 대사가 위안부 할머니를 방문해 사죄하며 △일본 정부 예산으로 보상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번 합의는 지원금 액수만 좀 늘었을 뿐 앞선 안들을 종합한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아베 정부가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고는 했으나 고노 담화에 들어 있던 ‘강제성’이라는 표현은 오히려 빠졌다.
이번 합의를 두고 두 나라 정부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 해결’이라고 선언한 것도 이상하다.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안을 두고 두 나라 정부가 ‘최종’이라고 판단할 권리는 없다. 이번 합의가 얼마나 위안부 피해자와 우리 국민, 국제사회 등이 수용할 만한 내용인지 지켜보는 게 올바른 태도다.
우리 정부의 섣부른 모습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이 내놓은 미완의 해법에 우리 정부가 들러리를 서는 듯한 모양새다. 이는 역대 정부가 법적 책임을 강조해온 입장과도 어긋난다. 우리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재단을 설립하고 일본이 돈을 내기로 한 방식도 사리에 맞지 않는다. 정부가 위안부 소녀상에 대해 언급한 것도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이번 합의에 앞서 위안부 문제의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인 피해자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절차조차 거치지 않았다. 이런 태도가 ‘위안부 문제의 올해 안 타결’을 밝혀온 박근혜 대통령의 처지나 한-미-일 협력을 강조해온 미국을 고려한 것이라면 더 큰 문제다. 원칙에 어긋나는 내용을 ‘외교적 해법’이라며 국민에게 강요해선 안 된다.
일본이 진정으로 위안부 문제의 최종 해결을 바란다면 해야 할 일은 어렵지 않다. 복잡한 논리를 펼칠 게 아니라 법적 책임을 흔쾌하게 인정하면 된다. 이는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하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협정으로 ‘식민지배의 모든 법적 책임이 종결됐다’고 하지만 위안부 문제는 당시에 거론되지 않았으며 1990년대 초반에야 국제 문제가 됐다. 유엔 등도 ‘일본군 위안소는 국제법을 위반한 전시 성노예제’라는 견해를 거듭 확인한 바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 위안부 소녀상이 세워진 것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전쟁범죄’라는 생각이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법적 책임을 인정하면 다른 쟁점들도 쉽게 풀릴 수 있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도 배상이나 지원이 아니라 법적 책임 인정이다. 이를 우회하려 해서는 위안부 문제가 결코 완전히 해결될 수가 없다.
이번 안을 바탕으로 새 협상 시작해야
위안부 문제는 이번 합의로 ‘최종 해결’된 게 아니라 이제야 출발점에 섰다고 할 수 있다. 과거를 부정해온 아베 정부가 비로소 이전 여러 정부의 인식 수준에 도달했으니 말이다. 어떤 길이 진정한 해법인지는 두 나라 정부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한-일 외교관계가 중요하더라도 문제를 얼버무리는 식으로 덮으려 해서는 안 된다. 두 나라는 위안부 문제의 최종 해결을 언급할 게 아니라 진정한 해법을 위해 새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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