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3일 ‘정윤회씨 국정개입 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박아무개 경정이 근무하는 경찰서와 집 등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박 경정에게 피의자 신분으로 4일 오전 검찰에 출석할 것도 통보했다. 외견상 수사가 급물살을 타는 모습이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예상대로 검찰 수사의 초점은 주로 ‘문건 유출’에 맞춰져 있는 듯하다. 수사 진행 과정을 더 지켜봐야겠지만 검찰이 과연 ‘비선 세력의 국정개입’이라는 사안의 본질을 제대로 파헤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더욱 커진다.
지금의 상황은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문제의 보고서를 사실상 ‘찌라시’로 규정했을 때와도 크게 바뀌었다. 우선 ‘청와대 비서관들과 연락이 끊겨 인간적으로 섭섭했다’(정윤회), ‘정씨를 10년 전쯤 보고 안 만났다’(이재만 총무비서관)는 따위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의 증언이 나오고서야 정씨는 말을 바꿔 4월 이 비서관과 통화한 사실을 시인했다.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이 청와대 파견 경찰 인사에 개입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박 대통령이 수사의 ‘가이드라인’을 정해버린 상황에서는 검찰이 이런 모든 것을 속시원히 파헤칠 수 없는 형편이다.
사실 문건 유출만 해도 제대로 조사하려면 김기춘 비서실장에 대한 강도 높은 직접 조사가 필수적이다. 청와대는 이미 4월께 문서 유출 사실을 인지했고, 문제의 심각성이 김 실장에게도 보고됐다는 것이 조 전 비서관을 비롯한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그런데도 김 실장이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고 방치해온 경위를 외면하면 문건 유출 사건 수사는 핵심을 잃게 된다. 필요하면 문건이 작성된 장소인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압수수색도 해야 한다. 하지만 검찰은 고소인 조사 단계부터 3인방을 직접 조사하지도 못하고 이들이 보낸 법률대리인의 진술을 받는 데 그쳤다.
비선 세력의 국기문란 행위 조사는 더욱 첩첩산중이다. ‘4월 전화통화’ 사실을 뒤늦게 시인한 데서도 나타났듯이 이들이 감추고 있는 내용이 얼마나 더 있는지는 현단계에서 아무도 모른다. ‘경찰 인사 개입’의 구체적인 증언이 나오는 상황에서 ‘국정에 개입한 적이 없다’는 말도 신빙성이 크게 떨어진다. 조 전 비서관도 “문서의 신빙성은 6할 이상”이라고 말했지만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찌라시’를 만들어 윗선에 보고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런데도 지금의 수사는 공직기강비서관실의 전직 근무자들을 ‘범죄집단’으로 설정해놓고 시작하는 분위기다.
청와대가 정말 진상규명 의지가 있다면 우선 김기춘 비서실장과 문고리 3인방을 청와대에서 내보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들이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한 속시원한 진상규명을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격이다. 그리고 검찰이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놓아도 국민은 믿지 않을 것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