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의 내란음모 사건 재판과 관련해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 내란음모 사건 판결을 유죄의 근거로 법원에 냈다고 한다. 1980년에 대법원이 ‘학원의 폭력시위를 조장하고 전국민적 봉기를 촉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해 내란음모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 봤고, 2004년 재심에서도 무죄를 선고하긴 했으나 구성요건 자체를 부인한 것은 아니라는 논리를 동원했다. 한마디로 궤변이 아닐 수 없다.
우선 검찰이 주장한 것은 법률적으로 황당하다. 1980년 대법원 판결의 정당성은 차치하고라도 2004년 재심 판결의 취지를 왜곡·비약하고 있음은 어처구니가 없다. 재심 판결문 어디에도 당시의 행위가 구성요건에 해당한다는 표현은 없다. “전두환 등의 헌정질서 파괴 범행을 저지하거나 반대함으로써 헌법의 존립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라며 내란음모 혐의 등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이를 두고 “재심 재판부 역시 구성요건 해당성은 인정한 것으로 볼 여지가 다분하다”며 편리한 대로 갖다 붙였다. 그러나 정당한 행위라는 표현만으로 구성요건 해당성은 인정했다는 건 지나친 비약이자 엄밀한 적용과 해석을 기본으로 하는 형사법의 대원칙에도 반하는 무리한 주장이다.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이 갖는 의미에 대한 검찰의 몰지각함과 몰역사성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총칼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는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여러 고문조작 사건을 저질렀고, 민주화 이후 재심 법정에서 대부분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이 사건은 쿠데타 세력이 공안 검찰과 어용 사법부를 동원해 만들어낸 대표적인 조작사건으로, 국민들의 민주화 투쟁 과정을 통해 정치적·법적 판단이 이미 끝난 사안이다. 검찰이 아무리 이석기 사건 유죄가 급했기로서니 이 사건을 들이댄 것은 국민적 합의와 상식을 뒤엎는 망동이 아닐 수 없다.
대법원은 이미 여러차례 군사정권에 부역한 떳떳지 못한 과거에 대해 공식적·공개적으로 반성과 사과를 했고, 재심 판결문에도 그런 취지를 담아왔다. 그러나 검찰은 군사정권 시절의 숱한 고문조작, 용공조작 사건에 대해 한번도 공식적으로 반성하거나 사과한 적이 없다. 심지어 민청학련 사건 재심 재판 과정에선 “가혹행위가 사법경찰, 검찰 단계에서 이뤄졌지 공판 과정에서 있었던 건 아니다”라는 망발까지 일삼았다. 검찰이 80년 김대중 사건을 들고나온 것 역시 이런 내부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수원지검뿐 아니라 검찰 조직 전체가 이번 기회에 선배들의 치욕의 과거사를 제대로 정리하고 넘어가기 바란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