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검찰총장 사퇴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한 검찰 간부가 채 총장 사퇴에 항의해 동조 사퇴를 하는가 하면 일선 평검사들의 집단행동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는 채 총장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사태를 되돌리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검찰총장을 무리하게 몰아낸 경위를 소상히 밝히고 그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면 관련자들에게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가장 먼저 규명돼야 할 대목은 청와대의 불법 개입설이다. 채 총장은 물러나면서 “지난주부터 청와대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나가라는데 어떻게 하겠느냐”며 청와대가 직접 사퇴 압박을 했다고 <경향신문>이 지난 주말 보도했다. 본지가 확인한 바로도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채 총장과 임아무개 여인 등의 혈액형을 들이대며 채 총장이 스스로 물러나는 게 좋겠다는 뜻을 대검 쪽에 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채 총장의 혼외아들설의 진위가 명백히 확인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처럼 사퇴를 종용했다면 이는 청와대의 명백한 직권남용이다. 국회 국정조사를 통해서라도 청와대 개입설의 사실 여부를 밝히고, 관련자들의 책임을 따져야 한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감찰 지시 과정도 석연찮다. 황 장관은 자신의 독자적 결정이라고 밝혔지만 앞뒤 정황으로 미뤄볼 때 믿기 힘들다. 검찰총장을 감찰하려면 대검 감찰 쪽과 사전 조율 등의 절차를 거치는 게 상례인데도 이번 감찰 지시는 이런 사전 조처 없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청와대 지시대로 움직인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그러니 검찰 내부로부터 “후배의 소신을 지켜주기 위해 직을 걸 용기는 없었던 못난 장관”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검찰의 불신을 받는 황 장관이 법무장관으로서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후배들로부터 더 이상 수모를 당하고 싶지 않으면 당장 사퇴하는 게 그나마 남아 있는 명예라도 지키는 길이다.
<조선일보>가 채동욱 혼외아들설을 보도한 경위도 규명돼야 할 대목이다. 이번 채동욱 찍어내기를 둘러싸고 청와대와 조선일보 사이에 추악한 정보거래가 있었다는 온갖 설이 난무한다. 통상적인 언론 취재로는 확보하기 힘든 개인 신상자료 등이 조선일보 쪽에 흘러들어간 과정 등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상적인 언론의 취재·보도 활동이라고 보기 어려운 대목들이다. 만약 권력의 하수인을 자처해 조선일보가 채 총장의 혼외아들설을 확산시켰다면 이는 권력과 언론 모두에 불행한 일이다. 언론의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혼외아들설 보도 과정에 권력과의 야합이 있었는지 밝히는 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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