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외아들설’ 보도로 공격받던 채동욱 검찰총장이 13일 결국 사퇴했다. 법무장관이 ‘감찰’ 카드로 총장을 쫓아냈으니 검찰 사상 전무후무한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법무부가 나서긴 했으나 사실상 대통령이 마음에 안 드는 검찰총장을 강제로 내쫓은 셈이다. 21세기에 민주국가임을 내세우는 나라에서 이렇게 막가도 되는 것인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번 사건은 여러 면에서 우리 민주주의의 앞날에 불길한 조짐을 예고하지만 당장 심각한 것은 검찰이다. 비교적 신망받던 채 총장 취임 뒤 검찰은 ‘정치검찰’의 오명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정치적 중립 행보를 보여왔다. 그런데 정권의 이해가 걸린 사건의 처리가 못마땅하다고 총장을 쫓아냈으니, 정권의 충견 노릇을 하지 않으면 가차없이 손보겠다는 메시지가 아니고 무엇인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지난 주말 ‘혈액형 대조’ 운운하며 사퇴를 압박했고, 채 총장은 이에 맞서 결백을 입증하기 위한 유전자 검사까지 자청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결과를 기다리는 게 순리지만, 청와대는 채 총장을 내몰기 위해 감찰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청와대의 이런 행태는 인사권 남용 수준을 넘어 사법기능의 한 중추를 맡은 정부기관에 대한 파괴행위나 다름없다. 검찰을 ‘권력의 시녀’로만 여겨온 김기춘 비서실장과 홍경식 민정수석 등 검찰 출신 참모들이 검찰권 훼손의 주역으로 나섰으니 그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 또 검찰을 외풍에서 보호하기는커녕 국정원 사건에 이어 이번에 다시 사지로 내몬 황교안 법무장관은 무슨 낯으로 후배들을 통솔하며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검찰이 30년 전으로 돌아갔다”는 한 검사의 말은 채 총장 사퇴 뒤 격앙된 검찰 분위기를 잘 설명해준다. 검찰은 이번 사태로 다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검찰 조직이 권력의 이런 노골적인 전횡 앞에 맥없이 무릎 꿇는다면 검찰은 영원히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점을 검사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조선일보>의 행태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초부터 축소보도로 일관한 이 신문은 지난 6월 검찰 수사 발표 당일에는 “선거개입에 관여한 글이 60여개에 불과하다”는 등 노골적으로 국정원의 불법행위를 옹호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후에도 운동권 검사가 수사했다는 둥, 서울경찰청 디지털증거분석실 동영상 내용이 왜곡됐다는 둥 하며 검찰 수사를 흠집 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다 결국 권력 핵심부에서 유출한 것으로 의심받는 혼외아들설을 제대로 확인도 않은 채 대서특필함으로써 정권의 뜻에 부응해 총장을 쫓아내는 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권력감시’라는 언론의 본분까지는 요구하지 않더라도, 권력의 불법을 옹호하는 것도 모자라 부당한 압력에 맞서는 권력기관장의 등에 비수를 꽂는 자객 노릇을 자청한 셈이다. 언론의 정도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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