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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검찰총장을 ‘권-언 공작’으로 쫓아내는 정권

등록 2013-09-13 19:11수정 2013-09-24 11:10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 아들’ 논란은 애초부터 권력과 <조선일보>가 손잡고 벌인 ‘채동욱 몰아내기 작전’의 냄새가 물씬 풍겨났다. 언론이 손에 넣기 힘든 은밀한 사생활 정보가 마구 흘러나온 것도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이 깊숙이 개입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작전의 총지휘자는 채동욱 체제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청와대라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었다. 그리고 청와대는 기어이 채 총장을 자리에서 쫓아냈다.

권력과 조선일보가 합작한 검찰총장 축출 1차 작전은 실패했다. 채 총장이 유전자 검사에 응한다고 나옴으로써 진실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가 됐다. 조선일보의 완패가 점차 분명해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채 총장을 쫓아내기로 마음먹은 권력은 집요했다. 현직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 실시라는 전무후무한 ‘2차 작전’에 나섬으로써 결국 자신의 뜻을 관철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팀이 채 총장의 사퇴를 압박하는 등 청와대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도 박근혜 대통령의 뜻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통해 다시 한번 잔인하고 독한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법률에 명시된 검찰총장의 임기 보장 등은 안중에도 없다. 자신이 그어놓은 선에서 반 발짝이라도 발을 내미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오기와 성깔이 번뜩인다. 채 총장 체제의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함으로써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것을 박 대통령은 참을 수 없었던 셈이다.

박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최소한의 상식과 순리마저도 포기했다. 이번 사안의 경우 유전자 검사 결과라도 기다리는 것이 상식이다. 도대체 이 정권이 언제부터 ‘의혹이 제기됐다는 이유’만으로 공직자를 갈아치웠던가. 장관 임명 과정에서 확인된 도덕성 흠집투성이 인물들에 대해 박 대통령의 보인 태도를 되돌아보면 검찰총장에 대한 전격적인 감찰 조사는 쓴웃음을 자아내게 할 뿐이다. 논리도 일관성도 없이 오직 검찰을 완전히 손아귀에 넣겠다는 노골적이고 폭압적인 힘의 논리만이 횡행할 뿐이다.

사실 진상규명이 정작 필요한 것은 검찰총장에 대한 근거 없는 사생활 정보를 조선일보에 흘려 공직사회를 혼란에 빠뜨린 국가기관이 어디인지를 밝히는 일이다. 물증이 없어서 그렇지 대다수 국민은 이번 사건에 국정원이 깊숙이 개입해 있으리라고 믿고 있다. 청와대가 ‘조속히 진상을 밝혀 논란을 종식시켜야 할’ 대상은 채 총장의 혼외 아들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국정원의 일탈행위 여부다. 그래서 국정원의 억울한 누명을 풀어주든가 아니면 국정원 소행임을 밝혀 엄중한 책임을 물었어야 옳다. 박 대통령이 이런 ‘공작정치’는 방조하면서 국정원 개혁을 하겠다고 하니 그 말에 진정성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오는 16일 여야 대표들과 만나 정국 정상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 만남이 결실을 맺으려면 국정원 개혁과 민주주의 회복에 대한 박 대통령의 진실한 의지와 결단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검찰총장 축출 사태에서 다시금 확인된 박 대통령의 오만한 국정운영 태도를 보면 그런 기대는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격이 아닌가 싶다. 나라를 점점 더 과거의 어두운 터널로 후진시키는 박 대통령의 행태가 참으로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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