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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청부 민원’보다 ‘제보자 색출’ 우선한 방심위 압수수색

등록 2024-01-15 18:30

경찰 수사관 등이 15일 오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내부 직원이 민원인의 개인정보를 유출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서울 양천구 한국방송회관에 위치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민원상담팀 등을 압수수색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이 가족과 지인에게 특정 보도를 겨냥한 심의 민원을 넣도록 했다는 ‘청부 민원’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경찰이 15일 방심위를 압수수색했다. 그런데 청부 민원 의혹을 수사하기 위한 게 아니라, 의혹의 제보자를 색출하기 위한 압수수색이었다. 청부 민원이라는 중대한 비위 의혹은 놓아둔 채 이를 가리키는 손가락을 잡아들이겠다고 수사기관까지 나선 것이다. 본말이 완전히 뒤집혔다.

류 위원장은 지난해 9월 가족과 지인 등을 동원해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파일’을 인용 보도한 방송사들을 심의해달라고 방심위에 민원을 제기한 뒤 이를 빌미로 신속 심의를 벌여 한국방송(KBS) 등 4개 방송사에 총 1억2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실이라면 심의기관의 책임자가 심의의 공정성을 스스로 훼손한 심각한 비위다. 가족·지인이 낸 민원의 심의에 류 위원장 자신이 참여한 것도 이해충돌방지법에 위배된다. 더불어민주당이 류 위원장을 검찰에 고발했고 서울 양천경찰서가 이를 넘겨받아 수사 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의혹의 본류에 대해선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기도 전에 제보자 색출 수사부터 본격화했다.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이날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방심위를 압수수색하는 등 강제수사에 나섰다. 제보자를 밝혀 처벌하려는 방심위의 수사 의뢰에 따른 것이다. 방심위는 자체 감사도 벌이고 있다. 청부 민원을 제기한 사람들의 개인정보가 외부로 유출된 점을 문제 삼아 수사·감사가 이뤄지고 있는데, 청부 민원 의혹은 류 위원장과 민원인들의 관계가 의혹의 핵심 내용인 만큼 민원인들의 신상을 드러내지 않고는 의혹 제기가 성립할 수 없는 사안이다. 이런 경우까지 개인정보 유출로 처벌한다면 공직자의 가족·지인이 연루된 비위 의혹은 내부 제보를 하지 말라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더구나 제보자는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를 했는데 이를 색출하겠다며 겁박하는 것 자체가 공익신고자보호법에 어긋난다.

청부 민원 의혹과 관련해 원칙이 거꾸로 서는 일이 너무나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류 위원장은 해명 한마디 없는 건 물론이고,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한 방심위 회의를 계속 무산시키더니 급기야 문제를 제기하는 야당 추천 위원들의 해촉건의안을 의결했다.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다. 이렇게 막무가내 행태를 보이는 방심위가 방송 공공성과 공정성을 심의한다니, 어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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