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위원장의 ‘청부 민원’ 의혹을 논의하기 위해 야권 위원들이 소집을 요청한 방심위 임시회의가 여권 위원들의 불참으로 무산됐다. 방심위는 회의 개의를 불과 두 시간 앞두고 회의 취소 사실을 기자들에게 알렸다고 한다. 7명의 위원 중 4명의 여권 위원이 일제히 불참을 통보하면서 회의 정족수(재적위원 과반)를 채우지 못한 것이 회의 무산의 이유다. 고의적인 회의 방해라 할 만하다. 청부 민원 의혹이 제기되자 제보자 색출을 위한 감사와 수사의뢰 등 적반하장식 태도로 일관하더니, 이제는 ‘위원장 방탄 방심위’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청부 민원 의혹은 류 위원장이 지난해 9월 가족과 지인 등을 동원해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파일’을 인용 보도한 방송사들을 심의해 달라고 방심위에 민원을 제기했다는 의혹이다. 방심위판 ‘고발 사주’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방심위는 민원 제기를 이유로 신속심의를 벌여 한국방송(KBS) 등 4개 방송사에 총 1억2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특히 류 위원장은 방심위 직원한테서 위원장 가족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민원을 냈다는 사실을 보고받고도 심의에 참여해 ‘이해충돌 방지 규정’을 위반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청부 민원 의혹은 지난달 23일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가 접수되면서 불거졌다.
그러나 류 위원장은 사과는커녕 해명조차 외면한 채 공익신고자 색출에 골몰하고 있다. 그는 청부 민원 의혹이 언론에 보도된 다음날인 26일 위원장 명의의 보도자료를 내어, “민원인 개인정보를 유출한 중대 범죄 행위”라고 이번 사건을 규정했다. ‘민원 사주’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었다. 후안무치한 물타기 전략이다. 방심위는 그 다음날 개인정보 불법 유출에 대해 서울남부지검에 수사를 의뢰하고, 내부 감사에 착수했다. 감사의 대상이 되어야 할 사람이 외려 감사를 지시했으니, 참으로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번 의혹의 본질은 독립적이어야 할 방심위의 수장이 심의 민원을 사주해 비판적인 언론을 손보려 했다는 것이다. ‘심의 권력’의 남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방심위 존립 기반을 뒤흔든 국기문란행위”(류희림)를 저지른 사람이 누구인가. 야권 위원들이 제안한 임시회의는 이에 맞서려는 정당한 요구였다. 그러나 그마저도 여권 위원의 ‘사보타주’(방해 공작)에 막혔다. 류희림 방심위, 도대체 어디까지 망가지려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