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의 강제동원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한 대리인단 및 지원단체가 26일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한국 기업의 기부로 조성한 재원으로 일본 가해 기업 대신 변제하는 방안을 ‘유력안’이라며 최근 통보했다고 한다.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받기 위한 수십년의 노력 끝에 대법원에서 승소한 피해자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거니와 한-일 관계의 미래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방안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선 안 될 것이다.
2018년 대법원에서 배상 확정 판결을 받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법률대리인단과 지원단체는 26일 서울과 광주에서 동시에 기자회견을 열어,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한국 기업들의 기부로 재원을 마련해 피해자들에게 변제하는 방안을 지난주 외교부 쪽으로부터 ‘한국 정부의 유력안’으로 들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미쓰비시중공업이나 일본제철과 같은 일본 피고 기업의 사죄나 출연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일본 다른 기업들의 출연조차 없는, 말 그대로 일본을 면책시켜주는 방안”이라며 “강하게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들은 이것이 일본 정부가 일관되게 주장해온 ‘한국이 해결하라'는 요구가 그대로 관철된 “0 대 100의 외교적 패배이자 참사”라고 비판했다.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는 “지지 말고 일본한테 사죄받기를 노력하자”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지난 7개월간 정부는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서둘러왔다. 이 과정에서 강제동원 등 한·일 과거사의 민감한 문제들의 의미를 제대로 헤아리지 않고, 피해자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시간에 쫓기듯 매듭지으려 하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방안은 일본 피고 기업에 대한 피해자들의 채권을 일방적으로 소멸시키는 데만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를 진행시키기 위해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의 정관을 변경해 피해자들에 대한 금전적 지원 근거를 마련하는 절차도 추진 중이라고 한다.
한·일 협력의 필요성은 존재하지만, 역사 문제를 이렇게 졸속으로 덮고 가는 것으로는 피해자는 물론 여론의 동의도 얻을 수 없다. 여론의 반발을 초래해 한-일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우려마저 있다는 것을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일본 피고 기업이 어떤 형식으로든 사과의 뜻을 밝히고, 상징적 액수로라도 재원 조성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 피해자들의 최소한의 요구다. 정부는 이 원칙 위에서 일본과 계속 협의를 해나가야 하며, 일본은 가해 역사를 외면하지 말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