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예산안 심의의 마지막 관문인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 등 조정소위원회’(예산소위)가 지난 17일부터 가동되고 있다. 여야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은 정국을 고려할 때, 순탄한 합의는 어려울 전망이다. 일각에선 사상 처음 준예산이 집행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준예산은 정부 회계연도 개시일인 1월1일 전까지 국회에서 예산안이 의결되지 않은 경우, 전년도에 준해 예산을 집행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정부 예산안을 의결하여야 한다”라는 헌법 조항에 따라, 국회는 법정 처리 시한인 12월2일까지 예산안을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매년 국회에선 극한 대립을 벌이다 여론의 질타가 이어지면 부랴부랴 새해 시작 직전에 합의하는 관행이 이어졌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국회는 2014년 국회법을 개정(국회선진화법)해 예산안 및 예산부수법안 심사를 매년 11월30일까지 마칠 것을 못박았다. 이 시한까지 심사를 마치지 못하고 협상이 결렬되면 정부 원안이 본회의에 부의된다.
국민의힘으로선 정부 원안 통과를 바라겠지만, 의석 과반(169석)의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부결시킬 수 있다. 국회에는 부결된 안건이 회기 중 다시 제출되지 못하는 ‘일사부재의’ 원칙이 있다. 정부는 새로운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하고, 12월31일까지 통과되지 못하면 새해부터 사상 초유의 준예산 사태가 벌어진다. 헌법 54조 3항은 준예산 집행 대상을 △국가기관의 유지 및 운영 △법률상 지출 의무 이행 △이미 예산으로 승인된 사업의 계속 등으로 한정했다. 정부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지출만 허용되고, 정부의 재량 지출은 일단 통제된다. 경제 상황 악화를 고려한 위기 극복 예산 또는 소외계층 지원 등의 복지 예산도 모두 쓸 수 없다. 성남시와 경기도에선 각각 준예산이 시행된 적이 있지만, 정부 차원의 준예산 집행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 한차례도 없었다. 구체적인 집행 대상과 요건 등 세부 가이드라인도 전무해 혼란이 불가피하다.
헌정사상 초유의 준예산 사태는 여야 모두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법정 처리 시한을 앞두고 여야의 협상이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먼저 준예산 가능성을 거론하며 야당을 자극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국정에 무한책임을 가진 집권 세력이 입에 담기에는 민망하고 무책임한 일이다.
최혜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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