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윤석열 정부의 첫 예산안 처리를 앞두고 국회 상임위원회 회의장마다 포연이 가득하다. 169석 거대야당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 비용을 비롯한 쟁점 예산들을 칼질하며 여권을 압박하고 있다. 여당은 ‘다수당의 횡포’라고 반발하며 사수에 나섰지만 뾰족수를 내지 못한 채 막판 지도부 협상에 기대는 모양새다.
15일 국회 상임위별 예산안 예비심사 상황을 종합하면, 17개 상임위 중 7곳에서 여야가 주요사업 예산 심사를 놓고 갈등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감액을 벼르는 예산은 대통령실 이전과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 비용이다. 앞서 행정안전위원회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는 지난 10일 경찰국 예산(경비 2억900만원, 인건비 3억9400만원) 전액을 잘라냈다. 소위는 사퇴론이 비등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업무추진비도 1억원 감액했다. 뒤이어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11일 전체회의에서 청와대 개방활용 예산 중 ‘청와대 사랑채 개보수 및 안내센터 운영’ 비용의 일부인 40억원 등 59억5000만원이 감액됐다.
국토교통위원회 예결산소위에서도 용산공원 개방 및 조성 사업 예산 중 일부(223억원) 감액을 논의 중이고, 16일 열릴 운영위원회 예결산소위에서도 대통령실 이전 관리 예산 일부(29억6000만원) 등을 칼질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예결산소위에서 예산을 잘라도 여당 의원이 위원장을 맡은 상임위의 경우 전체회의에서 감액예산을 무시하고 정부 원안을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로 넘길 수도 있다. 외교통일위원회 예결산소위는 앞서 민주당이 외교부 장관의 영빈관 설치 예산(21억7400만원)을 잘라냈지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소속 윤재옥 위원장이 의결을 유보하면서 외교부 원안이 통과됐다.
상임위 예비심사 단계에서 감액된 채 예결위로 넘어간 사업을 되살리려면 소관 상임위에서 재의결해야 한다. 민주당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상임위에서 삭감된 예산을 되살리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예산 업무에 밝은 국회 관계자는 “원내대표 사이에서 공감대가 형성되면 상임위 감액예산이 복원된 사례도 있긴 하지만 극소수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압도적 여소야대 지형에서 처음 맞는 예산정국에서 여당은 속수무책을 주장하고 있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의 한 의원은 “우리 입장에서는 윤석열 정부 통치철학을 뒷받침하는 정책이나 국정과제는 감액하면 안 된다는 입장을 갖고 있지만, 민주당이 숫자로 밀어붙이면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17일부터 시작하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에서 민주당이 삭감한 예산을 최대한 복구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예결특위 내 핵심 논의단계인 15명의 조정소위 위원도 민주당 9명, 국민의힘 6명으로 구성돼 있어 여당의 발언권은 제한적이다.
국회법에서는 11월30일까지 여야가 예산안에 합의하지 못하면 정부 원안이 12월1일에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다. 민주당이 이를 부결시키면 올해 예산이 내년에도 적용되는 초유의 준예산 사태가 현실화할 수 있다. 이런 파국을 막기 위한 유일한 출구는 여야 지도부의 ‘막판 빅딜’이다. 국민의힘 쪽은 내심 민주당이 행안위에서 되살린 ‘지역화폐 예산’ 7050억원 등을 지렛대 삼아 협상에 나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야권이 추진 중인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도 협상의 한 축이 될 수 있다. 다만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상임위 단계에서 판단한 예산은 절차상 문제가 있는 예산이 아니면 존중하는 게 맞다고 본다. 국정조사 역시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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