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민이 1일 오전 ‘이태원 참사’ 현장 인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출구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메시지를 쓰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서울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기 약 4시간 전부터 “압사당할 것 같다”, “사람들이 쓰러지고 있다” 등 현장의 위험을 알리는 시민들의 신고가 빗발쳤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정부는 매뉴얼이 없었다거나 급박한 상황을 예견할 수 없었다는 식의 변명으로 일관해왔다. 심지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렸던 것은 아니다”라는 망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1일 공개된 112 신고 전화 내용은 정부의 변명이 얼마나 뻔뻔한 것이었는지 충격적으로 증언한다.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는 국가는 어디에 있었나’라는 심각한 물음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압사당할 것 같아요. 너무 소름 끼쳐요. 아무도 통제 안 해요”(오후 6시34분), “사람들 지금 길바닥에 쓰러지고”(8시33분), “사람들이 압사당하고 있어요”(8시53분) 등 시민들의 신고 전화에는 공포스러운 현장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신고자의 비명까지 들렸다. 이렇게 위험 징후를 알리는 다급한 신고가 최소 11건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은 이 가운데 7건은 현장 확인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참사 사흘 전인 10월26일 경찰과 용산구, 상인단체 등이 모인 회의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 없는 3년 만의 핼러윈 축제라 안전사고가 우려된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축제가 열리기 며칠 전 용산경찰서 정보과에서 안전사고를 우려하는 보고서를 올렸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처럼 과밀 인파를 누구라도 예견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신고된 축제가 아니라는 지극히 형식적인 이유로 관계당국이 일제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무책임한 태도가 112 신고에 대한 안이한 대처로까지 이어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랬는데도 정부가 며칠 동안이나 ‘나 몰라라’식의 태도를 보였다니 분노를 넘어 절망을 느끼게 된다. 이상민 장관의 망발에 더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경찰은 집회나 시위와 같은 상황이 아니면 일반 국민을 통제할 법적 제도적 권한이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말까지 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공직자의 자세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이태원 참사 관련 입장문 발표를 마친 다음 인사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윤희근 경찰청장은 사흘이 지나서야 “현장의 심각성을 알리는 112 신고가 다수 있었지만 현장의 대응은 미흡했다”고 털어놓았다. 늦어도 한참 늦은 시인과 사과였다. 경찰청이 독립적인 특별기구를 설치해 진상을 조사하겠다고 하는데 과연 그 결과를 믿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상민 장관은 당장 해임해야 마땅하다. 112 신고 내용 등을 보고받지 않은 채 문제의 발언을 했다면 장관은커녕 공직자의 자격조차 없다. 정부의 대응이 제대로 이뤄졌다면 막을 수 있는 참사였음이 분명해진 만큼 정부 차원에서 석고대죄하고 철저한 책임 규명에 나서야 한다.
1일부터 희생자들의 발인이 시작됐다. 무고한 희생의 원인을 제대로 찾아주지 못하면 이들을 온전히 떠나보낼 수 없다. 책임 소재를 명확히 짚어내지 않고서는 또 다른 희생을 막을 재발방지책도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눈물의 애도와 냉철한 진상 규명이 함께 이어져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