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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까시꽃 향기와 5월 장마

등록 2021-05-30 15:29수정 2021-05-31 02:06

[최우리의 비도 오고 그래서]

최우리 ㅣ 디지털콘텐츠부 기후변화팀 팀장

생일은 운명이다. 그 날을 본인이 결정할 수 없다. 기자는 24절기 중 마지막 절기인 ‘대한’(1월20일)쯤에 태어났다. ‘소한(1월5일) 얼음이 대한에 녹는다’는 말처럼, 대한은 세밑 추위는 풀렸지만 그렇다고 봄은 아니다. 추위가 풀리는 시기이다 보니 맑은 날보다 흐리거나 눈이 오더라도 진눈깨비가 오는 날이 더 많았다. 더군다나 겨울방학 한가운데라 어릴 때는 친구들을 볼 수 없는 게 가장 아쉬웠다. 동생들은 보통 언니·오빠의 많은 것을 부러워하며 자란다지만, 오빠의 생일이 5월인 것은 꽤 오래 부러웠다.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인 ‘입하’(5월5일)와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하는 ‘소만’(5월21일)이 포함된 5월은 1년 중 가장 청명하다. 하늘도 생일 선물을 주는 것만 같았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진부하고 불필요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5월은 화사하다. 봄볕은 포근하고, 신록의 푸르름은 봄바람만큼 싱그럽다. 설레는 봄의 시작을 알리는 벚꽃이 지고 떠난 자리를 진한 향기의 아까시꽃과 화려한 장미가 채운다. 한 해의 절정을 알리는 여름을 준비하기 좋은 시간이다.

특히 몇해 전 도시양봉을 배우며 벌과 친해진 뒤에는 동네 뒷산 아까시나무의 안녕을 꼭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5월 중순이 지나도 서울 곳곳에서 아까시꽃 향기가 나지 않으면 불안하다. 올해는 아직 아까시꽃 내음을 실컷 맡은 적이 없다. 다만 이 상황이 얼굴과 한몸이 된 고성능 마스크 때문인지 5월 한파와 냉해, 잦은 강수 등 이상기후 때문인지는 아직 결론 내리지 못했다. 최근 한국양봉농협과 ㈔한국양봉협회에 올봄 꿀 수확량 통계를 문의했는데 아직 한창 채밀 중이어서 집계를 다 하지 못했다고 들었다.

기상청 통계를 보면, 올해 5월도 비가 잦았다. 최근 10년 동안 5월 중 비가 온 날은 8.1일이었는데 올해 5월은 13.1일이나 된다. 한창 꿀을 따 올 시기에 비가 내리면 벌통이 젖고 먹이가 부족해 벌들의 건강에도 나쁘다. 5월 꿀 수확량이 평년의 10%에 불과했던 지난해에도 5월 강수일수는 9.6일이었다. 강수량을 보면, 1991년부터 2020년까지 30년 동안 5월 평균치가 부산 155.9㎜, 서울 103.6㎜였다. 그러나 올해 5월은 서울에서 160.7㎜의 비가 내렸다. 평년으로 치면 부산만큼 서울에도 비가 온 것이다. 반면 올해 5월 부산은 139.2㎜로 평년보다 적게 내렸다. 점점 기상통계자료를 활용해 날씨를 분석하고 예측하기가 어려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조금이라도 일찍 답을 알고 싶은 내게 도시양봉을 하는 어반비즈서울의 한 양봉인은 “안 좋았던 해보다는 사정이 좀 낫다”고 설명했다.

추정하건대 한꺼번에 비가 많이 내려 아까시 꽃망울이 피기도 전에 시들거나 떨어지지 않았다면 꿀 수확에는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봄이 일찍 시작하는 이상기후 추세가 뚜렷해 개화 시기는 점점 일러지는데 4~5월이 춥거나 비가 잦으면 아까시나무뿐 아니라 전국의 과일나무가 꽃을 활짝 피우지 못하다 보니 수정이 어려워지고 열매를 맺기도 더 어려워진다. 농촌의 어려움은 기후위기를 살아가는 데에 기본값이 되었다.

<한겨레> 기사 중 날씨 기사는 항상 많이 보는 기사 순위권 내에 올라 있다. 올해 봄을 돌아보니 4월3일 서울 56㎜, 5월16일 서울 66㎜ 등 거의 주말마다 비가 조금이라도 내렸다. 이웃나라 일본이 5월부터 장마가 시작됐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한국도 장마가 일찍 시작하는 것 아닌지 관심이 쏠렸다. 전국민이 하늘 보고 사는 농부의 마음으로 오늘을 산다. 앞으로는 그 마음이 더 커질 수 있다. 기상청은 올해 장마도 평년처럼 6월 말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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