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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최우리의 비도 오고 그래서] 대만 가뭄과 저널리즘의 과제

등록 2021-05-02 16:52수정 2021-05-03 02:07

지난 13일 대만 북서부 타오위안에 있는 저수지(스먼)의 모습. 사진 속 보이는 저수지에 물이 매우 적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대만 19개 주요 저수지 중 17개 저수지의 물이 절반 미만이다. 신화/연합뉴스
지난 13일 대만 북서부 타오위안에 있는 저수지(스먼)의 모습. 사진 속 보이는 저수지에 물이 매우 적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대만 19개 주요 저수지 중 17개 저수지의 물이 절반 미만이다. 신화/연합뉴스

최우리 ㅣ 디지털콘텐츠부 기후변화팀장

지난 8일 밤 <뉴욕 타임스>는 대만 르포 기사를 온라인에 게재했다. 두명의 기자가 전하는 이야기는 습하고 비가 많이 오기로 유명한 대만에도 가뭄이 들었다는 간단한 날씨 뉴스가 아니었다. 가뭄으로 세계 최대 반도체 제조 기업인 대만의 티에스엠시(TSMC) 공장에 공업용수를 대기 위해 정부가 나섰고, 농민들은 논에 물을 대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기후위기로 인해 반도체 생산 국가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각종 문제가 드러나는 기사였다. 대만을 한국으로, 티에스엠시를 삼성전자나 에스케이(SK)하이닉스로 바꿔 읽어보니 더욱 아찔했다.

티에스엠시는 반도체 위탁생산 전문업체 세계 1위 기업이다. 인텔, 퀄컴 등 반도체 기업이 자체적으로 설계한 반도체를 직접 생산하는 ‘파운드리 사업’ 최강자다. 대만 간판 기업이기도 하다. 코스피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비중과 대만 자취안 지수에서 티에스엠시가 차지하는 비중이 비슷하다.

기사를 보면 최첨단 기업도 기후위기라는 ‘뉴노멀’ 상황에서 휘청일 수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초정밀 반도체를 만들기까지 반도체의 얇은 판(웨이퍼)에 남은 불순물을 수차례 물로 씻어내야 한다. 반도체 회사뿐 아니라 수많은 기업의 생산 공장에서 공업용수가 없으면 당장 공장 가동을 멈춘다. 기업의 성장과 쇠락은 한국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데, 그 과정에서 직장을 잃는 도시인이 생기고 붕괴되는 가정이 생길 수 있다.

이처럼 기후위기는 모두에게 피해를 주지만 누군가에게는 더 큰 피해를 준다. 활용할 수 있는 자산을 최대한 활용해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고, 희생되는 누군가가 있다. 이 때문에 기후위기는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기사가 전하는 내용을 보면, 대만 정부는 티에스엠시 본사가 있는 도시에 해수 담수화 공장을 건설했다고 한다. 강수량이 상대적으로 많은 북쪽 도시와 연결하는 파이프라인도 건설했다. 반면 다른 지역은 매주 이틀은 수압을 낮추고 물 공급이 중단됐다. 이러면서 대만 농지 20%에도 물대기가 중단됐다고 한다.

기후·환경을 깊이 고민하는 이들이 걱정하는 더 큰 문제는 불평등 상황에서 연대와 분배를 강조하며 진보한 인류의 역사가 혼란을 겪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사 속 대만 농민들도 절망하고 있었다. 영화 <승리호>나 비비시(BBC)와 에이치비오(HBO)가 공동제작한 드라마 <이어즈 앤 이어즈> 등 기후위기 뉴노멀 시대를 그린 작품도 정치가 붕괴한 미래를 상상한다. 그 안에서 피고 지는 인간의 조각난 삶은 관객으로 볼 때는 빠져들지만, 나의 삶이라고 생각하면 무력해지고 공포스럽다.

기후위기 문제를 다루는 기사를 보고 ‘팩트가 없는 과도한 주장’이라고 무시하는 지식인들을 종종 본다.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불안을 조장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도 한다. 저널리즘적 관점에서 일방적 주장은 배제해야 하고 구체적 사실 관계에 의한 합리적 의심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식인 스스로 기후변화와 관련한 과학적 지식은 얼마나 가지고 있고, 정치·사회·경제적 영향을 내다볼 수 있는지는 묻고 싶다. <뉴욕 타임스>는 대만의 경우 태풍이 잦아 산에서 흙이 저수지로 날아오면서 저장할 수 있는 물의 양이 줄고, 연 강수량을 채워주던 태풍 빈도마저 줄었다고 가뭄의 이유를 설명했다. 또 물값이 너무 싼 현실 때문에 물이 낭비되고 있다는 전문가의 말도 전했다. 이런 분석을 뒷받침하는 팩트는 ‘굳이’ 없었다. 태풍의 빈도, 강수량 수치를 분석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 수치가 없다고 이 내용을 쓰지 말아야 하는 걸까? 올해 가뭄이 기후위기 때문이라는 확실한 근거는 없으니 한번의 사건으로만 봐야 하는 걸까? 기후위기 시대, 저널리즘도 도전을 받고 있다.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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